여드름 잘 나는 피부엔 약산성 세안용품이 적합

  • 주간동아
  • 입력 2025년 12월 27일 10시 45분


[이광렬의 화학 생활] 약알칼리성 제품은 유해균 증식 억제하는 피부 유산균 없애

여드름이 나는 원인 가운데 혐기성 세균(여드름균)이나 두꺼운 각질층과 관련된 것은 생활 습관 개선으로 해결될 여지가 있다. GETTYIMGAES
여드름이 나는 원인 가운데 혐기성 세균(여드름균)이나 두꺼운 각질층과 관련된 것은 생활 습관 개선으로 해결될 여지가 있다. GETTYIMGAES
얼굴에 여드름이 생기면 적잖이 신경이 쓰인다. 아프기도 하고, 남들이 자신을 세수도 제대로 안 하는 지저분한 사람으로 보지는 않을지 걱정된다. 특히 외모에 관심 많은 사춘기 때 얼굴에 여드름이 나면 자존감에 큰 타격을 받는 아이들이 있다.

사춘기에 진한 화장, 여드름 부른다
사람 피부는 참 복잡하다. 피부 맨 바깥쪽은 죽은 세포층이 단단한 장벽을 이루고, 그 아래 살아 있는 세포가 자리한다. 피부에서 흘러나온 지방 성분은 죽은 세포층을 코팅하고 그 위에는 피부 유산균 같은 세균이 산다. 유산균이 잘 살아 있으면 유산균 분해 산물인 젖산이 피부층을 덮는데, 이 젖산으로 인한 약산성 환경에서는 다른 잡균들이 살 수 없다. 즉 건강한 피부는 죽은 세포층으로 이뤄진 손상 없는 장벽, 피부에서 흘러나오는 적정량의 유분, 유산균이 잘 살아 있는 약산성 환경으로 완성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드름은 왜 생길까. 피부에는 털이 나 있다. 그리고 털이 난 모공에는 피지선이 발달해 있다. 이 피지선은 피부를 보호하려고 지방 성분인 피지를 분비한다. 그런데 어떤 이유로 모공이 막히고 산소가 차단되면 모공 깊은 곳에 아주 적은 수만 존재하던 혐기성 세균(여드름균)이 갇혀 있는 지방을 먹고 폭발적으로 증식해 염증을 일으킨다. 그것이 바로 여드름이다.

여드름이 나는 원인은 크게 4가지다. ①호르몬 이상, 기름진 음식, 스트레스 등으로 지나치게 많은 피지가 발생하거나 ②혐기성 세균이 피부에서 잘 살 수 있는 환경이 되거나 ③피부에 두꺼운 각질층이 생겨 모공을 막거나 ④피부에서 염증 반응이 심하게 일어나는 경우가 그것이다. 첫 번째와 네 번째 원인은 사춘기가 지나가기를 기다리거나 체질을 바꾸거나 병원을 다녀야 개선 가능하지만, 두 번째와 세 번째는 평소 생활 습관을 바꾸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 이 두 가지에 대해 얘기하겠다.

사춘기 아이가 진하게 화장한 경우를 종종 본다. 문제는 파운데이션, BB크림, 쿠션 등에 지방 성분과 왁스 성분이 포함돼 있어 모공을 막기 쉽다는 점이다. 안 그래도 사춘기라 피지 분비가 많은데 화장품으로 모공을 막아버리니 혐기성 세균들이 살판이 난다. 막힌 모공 안에서 몸에서 흘러나온 지방 성분을 먹으며 잔치를 벌이는 것이다. 화장을 잘 지우기라도 해야 하지만, 공부로 바쁜 아이들이 세안을 꼼꼼히 할 가능성은 낮다.

여드름이 생기지 않는 조건 가운데 하나는 적당량의 유분이다. 유분은 피부가 외부 자극에 상하지 않도록 보호막 역할을 한다. 그런데 이런 유분의 존재에 질색하는 사람들이 있다. “얼굴에 유전(油田)이 있다”는 표현을 해가며 뽀득뽀득한 느낌을 내는 약알칼리성 세안용품을 사용하고, 하루에도 몇 번씩 세수를 한다. 이러면 피부에서 지방 성분이 너무 많이 사라지고, 바로 아래에서 피부 장벽 역할을 하는 죽은 세포층이 손상을 받아 각질이 더 많이 생길 수 있다. 각질이 많이 생기면 모공이 막히고 여드름이 잘 생기는 조건이 만들어진다.

바셀린은 여드름 치료제 위에 살짝
약알칼리성 세안용품을 자주 사용하면 피부가 약산성 상태가 돼 혐기성 세균 같은 유해균 증식을 억제하는 유산균도 다 떨어져 나간다. 유산균이 살지 않는 피부는 더는 젖산이 없고 약산성 환경을 유지하지도 못한다. 따라서 피부 유산균을 적절히 유지하려면 약산성 세안용품을 쓰는 편이 좋다. 씻은 느낌이 상대적으로 덜해 거부감을 갖는 사람이 많지만, 여드름이 잘 나는 피부에는 약알칼리성보다 약산성 제품이 훨씬 적합하다.

어쩔 수 없이 약알칼리성 세안용품을 써야 한다면 반드시 피부 보습에 신경 써야 한다. 석유를 증류해서 얻는 물질인 바셀린은 보습 효과로 유명하다. 물을 극도로 싫어하는 성분이라 피부에 바르면 피부에 있던 물이 바셀린 막 아래에 갇혀 빠져나가지 못하고 촉촉한 상태가 유지된다. 그런데 바셀린을 피부에 두껍게 바르면 모공들이 꽉 막혀버린다. 또다시 혐기성 세균이 피지선에서 흘러나온 지방 성분을 먹으며 증식할 수 있는 조건이 된다.

여드름 피부인 사람이 바셀린을 유용하게 쓰는 방법이 하나 있기는 하다. 여드름 치료제를 여드름 위에 도포한 다음 그 윗부분에만 바셀린을 살짝 바르는 것이다. 그러면 여드름 치료제가 증발하거나 닦여 나가지 않고 온전히 여드름 치료에만 사용되니 치료 효과가 커진다.

기름진 음식을 피하고, 땀 흘리는 운동으로 모공 속 노폐물을 잘 배출하고, 잠을 잘 자고, 스트레스를 피하고, 약산성 세안용품으로 적당히 세수하고, 파운데이션이나 바셀린을 두껍게 바르지 않아 모공을 열어두는 것. 누구나 실천할 수 있는 내용들이다. 병원에서 여드름을 치료하는 과정에 있다고 해도 부수적으로 이런 노력을 하면 여드름 상태 호전에 도움이 될 테니 반드시 실천해보기를 권한다.

이광렬 교수는… KAIST 화학과 학사, 일리노이 주립대 화학과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2003년부터 고려대 화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대표 저서로 ‘게으른 자를 위한 아찔한 화학책’ ‘게으른 자를 위한 수상한 화학책’ ‘초등일타과학’ 등이 있다.

《이 기사는 주간동아 1520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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