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인구학자이자 영국 옥스퍼드대 명예교수인 데이비드 콜먼은 지난해 11월 한국의 한 포럼에 참석해 “한국이 인구 문제 해결에 실패할 경우 세계 최초로 인구 소멸을 맞이하는 국가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도 같은 시기 엑스(X·옛 트위터)에 “세대마다 한국 인구의 3분의 2가 사라질 것”이라며 “인구 붕괴”란 게시물을 올렸다.
그동안 한국의 저출산 담론은 오랫동안 ‘숫자’의 언어에 갇혀 있었다. 합계출산율, 출생아 수, 인구 피라미드 같은 지표로 문제의 심각함을 주로 논의했다. 신간은 이 익숙한 논의를 조금 더 깊이 파고든다.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로 30년 넘게 인구경제학을 연구해 온 저자는 “왜 이 사회에서 결혼과 출산이 점점 어려운 선택이 됐는가”를 묻는다.
책은 여성 인구 구조와 결혼 감소, 유배우(有配偶) 출산율 변화를 꼼꼼히 살피며 한국 저출산의 핵심 요인이 ‘결혼의 감소’와 ‘첫째 아이 출산의 급락’에 있음을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여기에 사교육비, 주거비, 노동시장 불안정, 성평등 수준 같은 경제·사회적 요인을 결합해 출산 결정이 개인의 의지나 가치관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제약의 결과임을 논증한다.
특히 사교육비 증가가 둘째·셋째 출산에 더 큰 타격을 준다는 분석, 주택 가격 상승이 무주택자에겐 출산을 억제하고 유주택자에게는 자산 효과로 작용한다는 대목이 흥미롭다. 대부분의 데이터가 한국 사례 중심이기 때문에 직관적으로 받아들이기 쉬운 것도 장점이다.
다만 저출산 정책 평가에서 지나친 단정은 피한다. “지난 20년의 정책이 ‘완전한 실패’는 아니지만, 실제로는 결혼한 중상위층 가구에 편중돼 정책의 영향권 밖에 놓인 사람이 지나치게 많았다”고 짚는다. 또 비혼 출산 지원 역시 출산율 제고 수단이 아니라 인권과 선택의 자유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주장을 합리적으로 풀어간다.
책의 결론은 명확하다. 출산율 자체를 목표로 삼는 정책에서 벗어나야 한다. 청년의 현재를 힘들게 하고 미래를 불안하게 만드는 조건을 바꾸는 것이 우선이다. 아이를 ‘인구를 채우는 수단’이 아니라 ‘존중받아야 할 인간’으로 대하는 사회로의 전환이 없다면, 어떤 숫자도 회복되지 않는다. 인구 위기를 둘러싼 다소 감정적인 논쟁을 넘어, 정책과 사회가 어디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지를 차분히 짚어준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