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 체제로 교육체계 무너지자
독일에 있던 바르부르크 도서관, 보유 장서들 영국 런던으로 옮겨
르네상스부터 현재까지 700년간 억압에 저항한 ‘휴머니스트’ 조명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것들/세라 베이크웰 지음·이다희 옮김/652쪽·3만3000원·다산초당
독일은 히틀러 체제 당시 학교에서 전쟁을 일상적으로 가르쳤다. 하지만 바르부르크 도서관처럼 지식과 인간의 가치를 지키려 한 공간 역시 존재했다. 이 책은 그러한 휴머니스트들의 발자취를 좇는다. 1934년 독일의 한 학교에서 나치식 경례를 하는 학생들.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
나치 체제 때의 교육을 들여다보면 교육이 어떻게 인간을 길들이는 장치로 전락할 수 있는지가 선명해진다. 아돌프 히틀러가 1933년 집권한 뒤로 나치의 교육과정은 탐구심을 기르기는커녕 지식을 전달하려는 의지조차 보이지 않았다. 전쟁이 시작되기 전부터 아이들은 전쟁을 일상처럼 접하도록 길러졌다. 미술 시간에는 방독면을 쓴 인물이나 폭격 장면을 그렸고, 교실 밖에서는 군대식 대형을 맞춰 행진하는 훈련이 반복됐다.
독일 미술사학자 에르빈 파노프스키는 이러한 교육을 설계하고 정당화한 이들을 ‘곤충숭배자’라고 명명했다. 마치 개미나 벌처럼 인종과 계급, 국가 같은 집단을 중심에 두고 사고한다는 점에서다. 하지만 이 같은 암흑의 시기에도 인간이기를 끝내 포기하지 않은 이들이 있었다. 독일 함부르크에 있던 바르부르크 도서관은 나치 집권 직후 수석 사서의 주도로 6만 권에 이르는 장서를 포장해 영국 런던으로 옮겼다. 책과 함께 사유의 전통을 국외로 피신시킨 이 결정은 폭력과 전체주의에 맞선, 조용하지만 단호한 선택이었다.
영국 런던에 위치한 바르부르크 연구소.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이 ‘망명 도서관’은 이후 바르부르크 연구소로 발전해 국경과 시대를 넘어선 국제적 휴머니즘의 거점이 됐다. 이곳에는 페트라르카의 저작을 비롯해 이탈리아 여러 도시를 전전하던 15세기 휴머니스트들, 파시즘을 피해 망명한 20세기 학자들의 연구 성과가 함께 보존돼 있다. 사유의 계보는 이렇게 단절되지 않은 채 이어져 왔다.
신간은 르네상스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약 700년의 시간을 가로지르며, 복잡하고 불완전하지만 그 자체로 고유한 인간의 삶을 탐구해 온 휴머니스트들의 발자취를 따라간다. 14세기의 페트라르카와 보카치오에서 출발해 몽테뉴와 흄, 다윈, 버트런드 러셀, 조라 닐 허스턴에 이르기까지 서로 다른 시대적 조건 속에서 인간을 사유한 인물들을 새롭게 불러낸다.
저자가 말하는 휴머니즘은 추상적인 사상이 아니다. 억압과 폭력이 일상이 된 상황에서도 인간의 얼굴을 지키려는 ‘실천적 선택’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삶은 종교적 탄압과 전쟁, 인종차별과 불평등이란 위협에 둘러싸여 있다. 그럼에도 이들은 타인을 이해하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았다. 절망 속에서도 인간의 가능성을 끝까지 붙들었다.
특히 이 책은 휴머니즘의 지형을 서구 남성 중심의 전통에서 벗어나 확장시켰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르네상스 시기에 배제됐던 여성 학자 카산드라 페델레, 여성의 몸과 자유를 스스로 재정의한 어밀리아 블루머, 인종차별의 현실 속에서 존엄을 증명한 프레더릭 더글러스, 흑인 여성의 삶과 언어를 기록한 조라 닐 허스턴 등 기존 역사의 중심에서 밀려나 있던 인물들을 적극적으로 호출한다. 인간다움이 특정 문화나 시대의 전유물이 아니라 모든 인간에게 열려 있는 가능성임을 환기시키는 대목이다.
페스트가 도시를 초토화한 이후에도, 모든 것이 끝났다고 여겨졌던 두 차례의 세계대전 이후에도, 언제나 절망 대신 희망을 선택한 사람들이 있었다. 인간다움은 위기의 순간마다 희미해졌다가도 끈질기게 되살아났다. 억압과 불평등, 폭력과 전쟁이 일상이 된 시대에도, 인간의 정체성과 미래가 위협받는 인공지능(AI)의 시대에도, 우리가 무엇을 놓지 말아야 하는지 다시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타인의 슬픔과 고통에 무뎌지지 않기 위해 애써 온 수많은 휴머니스트들에게 보내는, 조용하지만 묵직한 격려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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