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단한 컬렉션으로 경계 넘나드는 뉴욕미술관
각기 다른 작품으로 정체성 구축… 소장품 재해석하고 과감한 기획
관객엔 신선함 작가엔 창의성 줘
韓 미술관은 세련된 건물 등만 집중… K아트 긴호흡 필요… 전시 질 높여야
K팝, K드라마부터 K뷰티, K푸드까지. 한국의 대중문화는 미국 뉴욕을 비롯해 해외 곳곳에서 주목받고 있지만, ‘순수 예술’ 비중이 높은 K아트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순수 예술 분야에서 뉴욕은 풍성하고 서울에선 부족한 것은 무엇일까. 세심한 큐레이팅과 소장품 연구를 바탕으로 경계를 넘나드는 과감한 기획 전시를 선보이는 미술관들이야말로 K아트가 나아갈 방향에 좋은 나침반이 될 수 있다.
● 새로운 시도에 열린 개방성
MoMA 들어서자 日캡슐타워
뉴욕 현대미술관(MoMA)의 ‘나카긴 캡슐 타워의 여러 삶들’전. MoMA 제공
지난달 24일(현지 시간) ‘뉴욕현대미술관(MoMA)’에 들어서자 일본 도쿄의 소형 모듈형 주택 ‘캡슐’이 보였다. 이 캡슐 여러 개를 겹겹이 쌓아 만들었던 ‘나카긴 캡슐 타워’는 1972년 긴자에 세워졌던 주거 타워로 출퇴근하는 비즈니스맨을 위해 맞춤 제작된 것이었다. 2022년 해체된 이 건물의 한 캡슐을 MoMA는 통째로 가져와 내부를 1970년대 원형에 가깝게 복원했다. 캡슐 안으로 들어서자 당시 사용했던 오디오 장비, 전자 기기, 소니 컬러 TV 등이 비치돼 있었다.
관객은 뉴욕 한복판에서 1970년대 일본 건축가들이 실행한 독특한 주거 실험의 흔적을 생생히 감상할 수 있다. 이 전시의 큐레이터인 에반젤로스 코치오리스는 “나카긴 캡슐 타워는 도시 속 개인 공간에 대한 색다른 해석”이라며 “단순한 건축물이 아닌 시대와 사회 속의 ‘살아있는’ 유산으로 조명했다”고 설명했다.
메트로폴리탄서 초현실展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의 ‘맨 레이: 사물이 꿈꿀 때’전. 뉴욕=김민 기자 kimmin@donga.com고대 유물부터 르네상스 걸작까지 폭넓은 컬렉션을 자랑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메트)’에선 초현실주의 작가 맨 레이의 사진과 설치 작품을 집중 조명하는 특별전 ‘맨 레이: 사물이 꿈꿀 때’가 열리고 있었다. 레이는 20세기 예술가로 메트보다 현대미술관에서 자주 전시되는 작가. 그런데 다양한 지역과 시대의 상설관을 갖춘 메트에서 전시된 덕에, 20세기 예술가들이 비서구권 미술에서 어떤 영향과 영감을 얻었는지 자연스럽게 체험할 수 있었다.
● “정체성 살리는 전시 많아져야”
맨해튼 어퍼 이스트 사이드의 작은 미술관인 ‘프릭 컬렉션’은 14∼19세기 유럽 회화와 조각, 고급 가구를 소장하고 있다. 렘브란트의 자화상 여러 점부터 프란시스코 고야, 윌리엄 터너, 에드가르 드가 같은 알짜 명품 컬렉션으로 유명하다. 이곳에서는 영국의 30대 화가인 플로라 유크노비치의 작품이 전시됐다.
프릭 컬렉션선 명작 재해석 플로라 유크노비치의 프릭 컬렉션 전시 ‘사계절’. 작가·빅토리아 미로·하우저앤드워스갤러리 제공유크노비치처럼 젊은 화가의 이례적인 전시에는 나름의 맥락이 있다. 작가는 미술관이 소장한 프랑수아 부셰의 로코코 대표작 ‘사계절’을 모티프로 재해석한 작품을 제작했다. 이곳의 수석 큐레이터이자 부관장인 제이비어 살로몬은 “프릭 컬렉션에 신선한 현대적 목소리를 불어넣는 시도로 전통 미술과 현대 사이의 대화를 활성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뉴욕의 주요 미술관들은 ‘소장품’을 기반으로 각자의 정체성을 만들고, 이것을 새롭게 조명하고 재해석함으로써 관람객에게 신선한 시각적 경험과 통찰을 제공했다. 뉴욕에 사는 예술가들에게 창작의 자극과 확장된 시야를 부여하기도 한다.
갤러리 맞춤 세심한 큐레이팅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의 오세아니아 소장품 상설전. 뉴욕=김민 기자 kimmin@donga.com이런 전략은 최근 ‘미술관 건립 붐’이 일고 있는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미술관은 건물만 있어서 되는 게 아니라, 고유의 소장품과 연구를 바탕으로 하는 기관이 돼야 지속성이 있다는 걸 보여준다. 한 미술 관계자는 “국내 미술관은 세련된 건물이나 사진 찍기 좋은 장소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며 “국립중앙박물관의 관객이 매년 늘어나듯 미술관도 질 좋은 소장품과 깊이 있는 기획 전시를 갖춰 긴 호흡으로 운영을 이끄는 시도가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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