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가 75분간 그림 20점 그리는 과정을 영화로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2월 20일 03시 00분


1956년작 ‘피카소의 비밀’
국립현대미술관 MMCA 상영
즉흥 연주 보는 듯한 황홀함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14일부터 상영 중인 영화 ‘피카소의 비밀’의 한 장면. 영화는 피카소가 70대 당시 제작돼 1956년 처음 상영됐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국립현대미술관에서 14일부터 상영 중인 영화 ‘피카소의 비밀’의 한 장면. 영화는 피카소가 70대 당시 제작돼 1956년 처음 상영됐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나는 가만히 앉아 있고, 파블로 피카소(1881∼1973)가 코앞에서 그림을 그려준다?’

상상만으로도 호사스러운 이 경험을 영화로 간접 체험할 수 있다. 14일부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MMCA 영상관에서 상영을 시작한 1956년 영화 ‘피카소의 비밀’을 감상하면 그런 기분을 느낄 수 있다. 피카소가 70대였을 때 제작된 이 영화에 필요한 건 단순하다. 카메라와 종이, 물감, 팔레트, 붓, 그리고 피카소다.

16일 관람한 영화는 감독의 내레이션으로 시작된다. “랭보가 시를 쓰고 모차르트가 작곡하는 과정은 눈으로 볼 수 없지만, 화가가 그림 그리는 과정은 볼 수 있다. 그리고 피카소 씨가 그 과정을 공개해 주기로 했다.”

흰 종이가 화면을 가득 메우고, 피카소가 펜과 붓으로 쓱쓱 선을 그려 나간다. 화가의 손은 보이지 않고 선들만 저절로 움직인다. 지금처럼 컴퓨터 그래픽이 없던 시절, 비밀은 ‘종이’에 있다. 물감이 스며들어 뒷면으로 비치는 종이를 이용해 한쪽에선 화가가 그리고, 다른 쪽에선 카메라로 이 모습을 담아냈다.

75분 러닝타임 동안 피카소는 총 20점을 그린다. 이날 객석에선 특별한 서사도 없이 그림 그리기만 이어지자 중간에 자리를 뜨는 이도 있었다. 하지만 ‘서사’가 아니라 캔버스 위에 펼쳐지는 선, 그리고 이와 함께 흐르는 다양한 음악에 집중하면 대가의 즉흥 연주회를 보는 듯한 황홀함을 얻을 수 있다. 검은 선을 그릴 때는 현악 선율이 고요하게 흐르다 화가가 채색할 때는 금관 악기가 극적인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리드미컬한 드로잉을 할 때는 타악기가 귀를 두드렸다.

그래도 집중력이 흐트러질 무렵, 카메라는 열중하는 피카소를 비춘다. 반바지만 입은 맨몸의 화가가 ‘초집중’해 짧은 시간에 드로잉을 완성하는 모습, 촬영 감독을 맡은 클로드 르누아르(인상파 화가 르누아르의 손자)도 볼 수 있다.

13번째 그림부터 피카소는 ‘더 야심 찬 것’을 보여주고 싶다며 유화와 콜라주 작품을 그린다. 여기서는 유화 물감을 덧칠하고 수정하며 다양한 형태와 구도를 조합하는 복잡한 과정이 펼쳐진다. 압권은 마지막 두 그림이다. 해변 풍경 하나를 두고 수십 개의 버전을 짜임새 있게 그려내는 모습을 보면 ‘피카소 할아버지의 마술쇼’를 보는 듯한 착각마저 든다.

‘피카소의 비밀’은 국립현대미술관 필름앤비디오 2025 ‘창작의 순간―예술가의 작업실’의 출품작으로 23일까지 볼 수 있다. 예술가의 창작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8편이 5월 24일까지 매주 수·금·토·일요일에 상영된다.

#피카소#국립현대미술관#다큐멘터리#예술가#창작 과정#영상관#드로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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