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에 대한 예의[소소칼럼]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6월 13일 11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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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 바다는 물때보다도 바람이 문제였다.

방파제에 올라서니 눈을 제대로 못 뜰 정도로 바람이 거셌다. 앞바람을 맞은 탓에 봉돌이 멀리 나가지 못하고 금방 고꾸라졌고, 물 밖으로 드러난 낚싯줄도 곧이곧대로 뻗지 못하고 휘어버렸다. 초릿대가 세차게 흔들려도 이것이 물고기의 입질 때문인지, 봉돌이 파도에 휩쓸린 탓인지 알 길이 없었다.

때문에 이곳에선 줄을 팽팽하게 당겨두고 입질을 기다리는 방식 대신, 줄을 천천히 감아올리다가 반바퀴씩 휙 감아 젖혀 하필 그때 입질하던 물고기의 아가리를 꿰길 바라는 요행 어린 낚시를 할 수밖에 없었다. 얼마 전에는 그렇게 주먹만 한 복어도 잡았더랬다.

빈 바늘을 거둬들이고 다시 지렁이를 물려 던지길 수십 번. 물고기 대신 묵직한 해초가 딸려 올라와 실망한 순간이 많았지만, 밑걸림에 채비가 아예 터져버리는 일이 없던 것만 해도 초보 낚시꾼에게는 감사할 일이었다.

강도다리 치어를 살려라
그러다 줄이 팽팽해지고 풀리는 게 평상시와는 달라 긴가민가하며 줄을 감아올렸다. 이리저리 당겨봐도 가벼운 것이 도무지 살아있는 물고기가 걸린 것은 아닌 듯싶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못난 해초로구나’ 체념할 때즈음 봉돌 밑에 작은 물고기가 걸려있는 게 보였다. 뭍으로 올려보니 손 한 뼘 만도 못한 길이의 새끼 강도다리였다.

끌려 올라올 때 힘을 다 썼는지 면장갑 낀 손가락으로 쿡쿡 찔러봐도 반응이 없었다. 일단 손을 옆에 갖다댄 뒤 사진 한 방 찍고, 줄을 들어 얼굴 옆에 갖다댄 뒤 또 한 방 찍고. 굳이 길이를 안 재봐도 잡아들여서는 안 되는 치어 같아 그만 놓아주려 바늘을 찾았다.

‘어라?’

몸통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입안을 훑어봐도 바늘 끝이 보이지 않았다. 바늘은 내장 깊은 곳에 걸려있는 듯했다. 새끼손가락도 들어가지 않을 작은 입으로 무슨 욕심을 그렇게 부렸는지. 일단 급한 대로 코털 집게를 깊숙이 넣어 바늘 같은 걸 잡고 휘휘 돌려봤으나 갈고리 모양의 바늘이 살점을 단단히 파고든 게 쉽게 빠질 리 없었다.

바늘을 빼려면 바늘을 몸 안쪽으로 깊게 밀어넣어 갈고리 끝을 빼낸 뒤, 끝이 걸리지 않게 천천히 당겨 빼내야 했다. 하지만 그 작은 입을 통해 모든 걸 해내기엔 실력이 한참 부족했다. 그렇게 수 분이 넘게 씨름하다가 도무지 못하겠다, 물고기도 이미 죽었겠다, 바닥에 내팽개치는데 잠잠하던 물고기가 갑자기 펄떡펄떡 날뛰기 시작했다. 제발 이 고통을 그만 끝내달라고 온몸으로 애원하는 듯했다.

손날로 내리쳐 기절이라도 시킬까 했지만 이미 체력을 다 써버린 이놈한테는 그게 마지막 한 방이 될 것 같아 다시 수술을 해보기로 했다. 다 말라가는 몸통을 집어 들었지만, 이번에도 이렇다 할 방법은 없었고, 집게에 걸리는 족족 힘껏 잡아당겨 보는 게 전부였다. 하지만 삼킨 지렁이 조각을 빼내는 것 외에는 별 수확이 없었다.

물고기는 완전히 숨이 끊어진 듯 작게 입을 벌린 채 잠잠했다. 아가미에서 선홍색 피가 스며나왔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뭐라도 해보는 게 맞다고 생각해 낚싯줄을 검지 손가락에 몇 바퀴 감고 힘을 힘껏 주어 당겼다. 마침내 ‘까드득’하는 소리와 함께 살점과 바늘이 튀어나왔다.

얼른 물고기를 집어 바다에 던졌다. 물고기는 흰 배를 까뒤집어진 채 그대로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해초에 얹힌 물고기를 한참 내려다보며 반전을 바랐으나 그것은 끝내 움직이지 않았다.

작은 물고기에 대한 예의
날은 여전히 밝고, 바람도 잦아드는 듯했다. 미끼도 부족하지 않았다. 하지만 곧장 채비를 챙겨 일어났다. 도무지 바늘에서 물고기의 내장 조각을 빼내고, 그곳에 다시 지렁이를 끼워 던질 마음이 들지 않았다.

나 역시 수산시장 수조 속 물고기를 동정하는 기사를 보고 코웃음을 치던 쪽이었으나, 직접 두 손으로 간절한 생명의 불씨를 서서히 꺼트리는 경험은 한 인간성 혹은 영혼이라 할 만한 것에 큰 가책을 안기는 것이었다. 강도다리의 사체를 앞두고서 ‘물고기는 통각수용기가 없어 고통을 모른다’는 학설이나, 죽어서도 영양분이 되어 바다를 이롭게 한다는 섭리 따위를 운운하며 손쉽게 죄책감을 털어내려 한 모진 감수성이 오히려 동정 받아 마땅한 것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런 가책 역시 내장을 콱 물린 바늘처럼 쉽게 빠질 줄 몰랐다.

생계나 생존을 위한 낚시는 수천 년간 지속돼온 정당한 행위이고, 때에 따라선 숭고하기마저 한 것이라서 대문호들의 글감이 되기도 하지만, 취미를 위한 낚시란 ‘이 남자 제법 취향 있네’라는, 돌아서면 잊힐 얇은 각인을 새기기 위해 낭비될 뿐 가치나 의미를 찾아보기 어려운 일이다.

내가 강도다리에게 배운 게 있다면 재미를 위해 비록 작더라도 한 생명을 고통에 몸부림치게 하고 끝내 죽이고마는 건 자신의 양심에도 큰 생채기를 내고 만다는 것. 취미로 낚시를 즐기려는 자는 반드시 잡은 물고기를, 상처는 남을지언정 생명에 지장 없는 상태로 자연으로 돌려보낼 수 있는 기술을 갖춰야 한다는 것. 그것이 물고기에게 무의미한 고통을 안기는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예의라는 것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인터넷 검색창에 ‘물고기 바늘’까지만 입력했는데 ‘빼는 법’이 자동 완성됐다. 그런 가책에 괴로워한 게 나만이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감이 들면서도, 그 많은 사람이 검색하면서 자동완성 목록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물고기가 배를 까뒤집으며 죽어 나갔을까를 생각하니 마음 한편이 다시 아려왔다.

인터넷에 올라온 강의들을 보니 바늘을 빼기 위한 도구들은 이미 많이 발명돼 있으며, 방법만 안다면 나무젓가락 한 쌍으로도 가능했다. 어떤 상황에서든 바늘을 척척 빼낼 수 있는 명의가 되기 전까진 낚싯대를 잡지 말자 다짐하면서도, 사진을 자랑하고픈 욕구를 참지 못한 것도 창피해할 만한 일이다.

[소소칼럼]은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나 소소한 취향을 이야기하는 가벼운 글입니다. 소박하고 다정한 감정이 우리에게서 소실되지 않도록, 마음이 끌리는 작은 일을 기억하면서 기자들이 돌아가며 씁니다.



주현우 기자 wooj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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