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단에서 마주친 19억 년의 세월[곽재식의 안드로메다 서점]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1월 13일 01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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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누비며 써낸 자연 이야기
흔한 돌멩이도 과학의 눈으로
단아한 글솜씨에 술술 읽게 돼
◇우리 땅 돌 이야기/이승배 지음/264쪽·1만6000원·나무나무

‘호상편마암’이라는 돌을 들어봤는지 모르겠다. 이름만 들으면 낯설지만 사실 한국에서는 엄청나게 흔하게 볼 수 있는 돌이다. 아파트 화단이나 길가 가로수 둘레 같은 곳에 쌓아 놓은 돌이나 바위 중에 푸르죽죽한 회색 바탕에 흰색으로 줄무늬가 이리저리 들어간 것이 바로 호상편마암이다. 말로 하면 뭔지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실제로 보면 “아, 이런 것 우리 동네에도 많은데”라고 할 것이다. 돌을 쌓아 두어야 하는 곳이면 전국 어디서나 너무나 흔하게 볼 수 있어서 이런 돌에 무슨 대단한 사연이 있겠다고 생각하기 쉽지 않다.

그런데 저자는 이런 돌에서 재밌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한국에서 정원 꾸미기용으로 널리 쓰이는 호상편마암 중에는 생긴 지 최대 19억 년이 된 것도 있다는 것이다. 석유나 석탄이 생겨나기도 전인 그야말로 까마득한 옛날이다. 지구의 형체가 무슨 머나먼 황량한 외계 행성 같았던 어마어마한 옛 시절에 재료들이 굳어지면서 생겨난 돌이 호상편마암이다. 그렇게 생긴 돌이 긴 세월 동안 땅 한쪽에 박혀 있다가 어느 날 문득 채석장 노동자의 손에 쪼개져서 전국의 아파트 단지 이곳저곳에 쌓이게 된다.

흔히 일본 후지산 같은 높다란 산을 보면 옛날 사람들은 산이 크고 높으니까 괜히 신령스럽고 대단한 것이라고 숭배하곤 했다. 그렇지만 막상 그 산이 언제 생겼는지를 따져 보면 후지산의 상당 부분은 고작 수십만 년도 되기 전에 화산이 폭발해 생겼다. 후지산이 생기던 시대면 한반도에서는 구석기 시대 인류가 이미 살던 무렵이다. 한반도의 인류는 동쪽으로 가서 후지산이 생기는 순간을 목격할 수도 있었다. 과학으로 따져 보면 후지산보다 19억 년 전에 굳어서 만들어진 한국 아파트 화단의 호상편마암이 훨씬 더 ‘어르신’이라고 할 수 있겠다.

과학자들은 도대체 어떻게 어느 호상편마암이 19억 년 전에 생겼다는 것을 알아낼 수 있는 것일까. 그 원리에는 정밀한 수준으로 원소 성분을 분석해 내는 화학기술이 활용되고 있다. 말 그대로 발에 채는 돌멩이지만, 과학의 눈은 이런 식으로 수억 년에 이르는 옛 사연까지 별별 신기한 이야기를 찾아낸다. 나는 이것이 바로 과학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직접 한국 이곳저곳을 돌아다닌다. 돌, 바위, 지형에 대한 여러 사연을 풀어 놓는다. 그래서 어느 외국의 저명 학자가 쓴 책에 비해 훨씬 더 소중한 가치를 갖고 있다. 한국인이 보기에 훨씬 더 가깝게 와닿는 이야기들로 책 한 권이 가득 차 있다. 이렇게 가까운 대상을 과학의 눈으로 다시 볼 때 느낄 수 있는 깊은 맛을 제대로 전해 준다. 요란하게 꾸미는 설명 없이도 전국 곳곳에 얽힌 사연을 아름답게 풀어나가는 단아한 글 솜씨를 보다 보면 자연을 천천히 즐기는 운치를 느낄 수 있는 책이다.


곽재식 숭실사이버대 환경안전공학과 교수·작가
#세월#자연 이야기#과학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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