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신칸센이 물총새의 부리를 본 뜬 까닭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4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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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널 통과 굉음 물총새 모방해 해결
오염물질 여과장치 아가미에서 영감
신기한 생체모방 기술 30가지 소개
◇자연은 언제나 인간을 앞선다/패트릭 아리 지음·김주희 옮김/356쪽·2만2000원·시공사

일본의 고속철 신칸센 전동차 설계를 맡았던 공학자 나카쓰 에이지(仲津榮治)는 1990년 난관을 맞닥뜨렸다. 시범 운행을 하던 신칸센은 터널 밖으로 나올 때마다 굉음을 냈다. 해결책을 찾기 위해 골몰하던 그는 우연히 오사카에서 열린 야생조류학회에 참석했다가 ‘무음 비행의 제왕’이라고 불리는 물총새로부터 답을 찾았다. 납작하고 긴 물총새의 부리를 본떠 15m 길이의 신칸센 앞머리를 새롭게 설계한 것. 결과는 놀라웠다. 시속 298km로 달리면서도 진공청소기가 내는 소음보다 더 조용하게 터널을 빠져나온 것이다.

영국 BBC 다큐멘터리 제작자이자 생물학자인 저자가 동물로부터 영감을 받아 만든 ‘생체모방(Biomimicry)’ 기술 30가지를 정리했다. 생체모방이란 생물의 생태나 신체 구조로부터 영감을 받아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일컫는다.

대왕쥐가오리의 주둥이는 해양 생태계를 지킬 기술을 개발하는 데 영감을 줬다. 이 가오리는 먹이를 먹기 위해 직사각형 모양의 거대한 입을 벌려 바닷물을 빨아들이는데, 이후 플랑크톤만 입안에 남고 나머지 바닷물은 아가미구멍을 통해 밖으로 빠져나간다. 입 내부에 있는 아가미 판으로 플랑크톤만 남기고, 나머지는 판 뒤쪽으로 튕겨내는 식이다. 네덜란드 헤이그응용과학대 연구팀은 대왕쥐가오리의 아가미 구조를 본떠 해양 환경오염의 주범인 미세 플라스틱을 여과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들었다. 아가미처럼 생긴 그물로 물속을 떠도는 플라스틱 오염 물질만 빨아들여 거르는 기술이다.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 화가이자 공학자였던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는 대표적인 자연 예찬론자였다. 그는 박쥐 날개를 모방해 ‘날아다니는 기계’라는 제목의 스케치를 남겼는데, 훗날 이 스케치는 최초의 동력 비행기를 만든 라이트 형제에게 영감을 줬다. 생전 다빈치는 “자연은 최고의 스승”이라는 말을 남겼다. 혹등고래, 문어, 낙타 등 인간이 풀지 못한 문제를 미리 풀어낸 ‘자연의 해결사’들의 이야기가 흥미롭다.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자연은 언제나 인간을 앞선다#물총새#생체모방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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