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R속 관객들, 무용수와 ‘소통의 춤’ 추다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2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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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R공연 ‘이십삼각삼각’ 선보여
무대 없애고 1층 객석도 전부 치워
관객들 앉고 걷고 누우며 작품 체험

국립현대무용단이 선보이는 ‘이십삼각삼각’은 관객이 가상현실(VR) 기기를 쓴 채 공연장을 다니고 무용수와 상호 작용하며 작품에 참여한다. 국립현대무용단 제공
국립현대무용단이 선보이는 ‘이십삼각삼각’은 관객이 가상현실(VR) 기기를 쓴 채 공연장을 다니고 무용수와 상호 작용하며 작품에 참여한다. 국립현대무용단 제공
가상현실(VR) 기기를 착용하자 외딴 곳에 홀로 떨어진 것 같았다. 정처 없이 걷다 작은 집에 들어섰다. 창문 하나 달린 원룸이다. 시야각을 보아 하니 가상의 나는 방바닥에 앉아 있는 듯하다. 현실의 나도 덩달아 무대 바닥에 주저앉는다. 눈앞에 널브러진 과자 봉지와 옷가지 사이로 가상의 무용수가 등장한다. 그는 나와 부딪칠 듯 부딪치지 않으며 홀로 춤을 춘다. 고립된 느낌은 덜하지만 만질 수 없으니 온기는 느낄 수 없다.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국립현대무용단이 24일부터 26일까지 선보이는 VR 기술융합공연 ‘이십삼각삼각’의 일부다. 총 3막으로 구성된 공연 중 2막에서 관객 50명은 VR 기기를 쓰고 가상현실을 체험한다. 지난해 초연이 화제를 모으며 당초 4회로 예정됐던 올해 공연은 5회로 늘렸다. 표는 예매 시작 당일 전석 매진됐다.

안무가 송주원 씨
안무가 송주원 씨
예술의전당에 있는 리허설 현장을 16일 찾아 송주원 안무가(50)를 만났다. 송 안무가는 도시 곳곳에 투영된 존재의 의미를 현대무용과 영상, 기술과 엮어 풀어내고 있다. 그에게 VR 기술은 가상과 현실 간 경계를 지우는 단순 장치에 그치지 않는다. 그는 “VR 기술은 사람들이 통상 정면(180도)으로만 보는 세상을 360도로 보여준다”며 “팬데믹은 이 세상이 사실 하나로 연결돼 있으며 온라인 소통만으로는 고립감이 해소될 수 없음을 깨닫게 했다”고 말했다.

‘이십삼각삼각’은 고립된 사람들이 연결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춘다. 제목 속 삼각형은 고립된 개인을, 20개 삼각형으로 이뤄진 정이십면체는 하나로 이어진 세계를 각각 의미한다.

송 안무가는 관객―무용수, 무대―객석, 현실―가상 간 경계를 허물었다. 공연은 무대 중앙에 선 관객들을 무용수 8명이 둘러싸며 춤을 추는 것으로 시작한다. 2막 VR 영상에서 독무를 추던 무용수들은 관객과 3막에서 ‘진짜로’ 만난다. 나란히 앉아 눈을 맞추거나 가볍게 손을 잡고 걸으며 누군가와 연결될 때의 온기를 느끼게 해준다.

공연을 위해 무대를 없애고 1층 객석도 전부 치워 관객과 무용수 간 장애물이 없는 공간을 만들었다. 관객은 텅 빈 공간에 앉거나 걸어 다니며 작품에 스며들게 된다. 이는 조명이 꺼진 무대에 다 같이 누워 천장을 바라보는 마지막에서 절정에 이른다.

2014년부터 영상작업을 해 온 송 안무가에게도 이번 작품은 쉽지 않았다. 초연에 비해 관객 수는 20명에서 50명으로 늘었고 무대 면적은 줄었다. 그는 “무대 위 안무뿐 아니라 VR 영상에서 무용수들이 어떻게 춤출지, 카메라는 그에 맞춰 어떻게 움직일 것인지 등을 정교하게 계획해야 했다”며 “바뀐 극장 환경에 맞춰 관객 동선을 새로 구상하는 것이 특히 까다로웠다”고 했다.

안무는 무용수 8명의 경험을 바탕으로 짰다. 각자 고립을 느꼈던 순간을 이야기한 후 이를 토대로 캐릭터와 동작을 구성했다. 송 안무가는 “무용수와 제작진의 도움 없이는 완성하지 못했을 작품”이라고 했다. 3만 원.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국립현대무용단#vr 기술융합공연#이십삼각삼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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