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 갱스터로 변신한 배우 추상미…“남편의 표정과 닮아 있어 놀랐다”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월 19일 13시 5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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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오펀스’로 8년 만에 무대에 오른 배우 추상미(50)는 “관객들이 울다 웃다 기립박수를 치는 작품은 흔치 않아요. 제게 ‘오펀스’는 선물입니다”라고 말했다.  레드앤블루 제공.
연극 ‘오펀스’로 8년 만에 무대에 오른 배우 추상미(50)는 “관객들이 울다 웃다 기립박수를 치는 작품은 흔치 않아요. 제게 ‘오펀스’는 선물입니다”라고 말했다. 레드앤블루 제공.


“예술가로서 사람들의 아픔을 어루만져야 한단 소명에 다가섰어요. 운명같은 작품이죠.”

8년 만에 연극 무대로 돌아온 배우 추상미(50)는 남성 갱스터 역으로 열연 중인 ‘오펀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지난달 29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아트원씨어터에서 개막한 ‘오펀스’는 미국 필라델피아에 사는 고아 형제가 갱스터 해롤드를 납치하며 가족이 돼가는 이야기다.

9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무대 위에서 너무도 행복했다”며 “위로와 격려를 건네는 역할인데 되레 관객들이 울고 웃는 모습을 보며 격려를 받았다”고 했다.

극중 충동적이고 폭력적인 형 트릿은 강도질을 하며 동생 필립을 과잉보호하듯 부양한다. 트릿은 돈을 노리고 해롤드를 집으로 납치하지만 고아 출신인 해롤드는 오히려 이들을 자식처럼 품어준다. 미국 브로드웨이에선 알렉 볼드윈, 로버트 드니로 등이 해롤드 역에 오른 적 있으나 여자 배우들이 맡기는 한국이 처음이다. 2017년 남성 배우로만 구성된 국내 초연 이후 2019년 최초 여성페어가 꾸려지며 젠더프리 작품이 됐다. 이번 공연에선배우 남명렬, 박지일,추상미,양소민 등 네 명의 남녀 배우들이번갈아 가며 해롤드 역을 연기한다.

원작자 라일 케슬러는해롤드를 고전적인 마초 캐릭터로 설정했지만 추 씨는 성별 경계를 넘어 ‘상처 입은 치유자’로 소화했다. “해롤드는 끝없는 경쟁과 소외에 지친 우리 어깨를 주물러주는 존재예요. 남성 갱스터라기보단 고아로 자라 아직 양육에 서툰 인물로 표현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신발끈이 풀린 채 걷는 필립에게 묶는 법을 알려주는 대신 끈 없는 로퍼를 사주는 장면에선상처받은 이들이 저마다의 최선을 다할 때의 마음을 표현하려 했다.

“예술가의 정체성은 우리 사회 속 아픔을 멀리서 비판하는 데 그쳐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직접 어루만지고 어깨를 토닥여줘야 해요.”(추상미) 레드앤블루 제공
“예술가의 정체성은 우리 사회 속 아픔을 멀리서 비판하는 데 그쳐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직접 어루만지고 어깨를 토닥여줘야 해요.”(추상미) 레드앤블루 제공


다만 캐릭터를 외형적으로 구축하는 데는 씨름을 벌였다. 데뷔 약 30년차 배우인 그에게도 남자 배역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일상에서도 목소리가 가늘어지지 않게 하는 등 남성의 물리적 특성으로 여겨지는 것을 극대화하고자 끊임없이 연습했다. 그는 “학창시절부터 강인하고 털털한, 소위 ‘남성적’인 면이 많았다”며 “최근 아들이 ‘엄마 변했어. 조폭 같아’라고 하더라. 일부러 따라한 건 아니지만 남편과 표정, 제스처 등이 꼭 닮아있어 스스로도 놀랐다”며 호탕하게 웃었다.

추상미는 ‘오펀스’를 시작으로 향후 젠더프리 작품에 꾸준히 도전할 계획이다. “관객들의 열렬한 환호 덕에 앞으로 연극을 계속 해도 되겠다는 확신을 얻었어요. 성별에 국한되지 않고 굵직한 배역을 두루 맡으며 관객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싶습니다.”

우리 주변의 트릿과 필립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묻자 그는 “상처는 사람을 사람답게 만들어주기도 한다”며 “상처를 쓰레기통에 버려야 할 폐기물이 아니라 더 단단해지기 위한 삶의 재료라고 생각해보면 어떨까”라고 되물었다. 2월 26일까지, 4만4000원~6만 6000원.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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