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년 족쇄’ 벗은 그녀들은 왜 행복해지지 않았을까[책의 향기]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0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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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폭력/도러시 고 지음·최수경 옮김/560쪽·3만 원·글항아리

나무로 만든 전족 모형(윗쪽)과 전족용 신발이다. 아랫쪽 사진은 19세기 후반 전족을 한 중국 여성(오른쪽)이 아동용 같은 작은 
신발을 신고 불편하게 걸어가고 있는 모습. 저자는 “전족에 대한 욕망은 남성들의 환상에서 시작됐다”며 “(남성중심사회에서) 여성의
 유행은 그의 사회적 지옥을 결정짓는다”고 일갈했다. 글항아리 제공
나무로 만든 전족 모형(윗쪽)과 전족용 신발이다. 아랫쪽 사진은 19세기 후반 전족을 한 중국 여성(오른쪽)이 아동용 같은 작은 신발을 신고 불편하게 걸어가고 있는 모습. 저자는 “전족에 대한 욕망은 남성들의 환상에서 시작됐다”며 “(남성중심사회에서) 여성의 유행은 그의 사회적 지옥을 결정짓는다”고 일갈했다. 글항아리 제공
1860년 중국의 항구도시 샤먼(廈門).

영국 선교사 존 맥고언 목사의 부인은 끔찍한 광경을 목격했다. 이웃집에서 비명소리가 들려 뛰어가니 어머니가 딸의 발을 조여 매고 있었다. 발을 헝겊으로 싸매 인위적으로 작게 만드는 전족(纏足)이었다.

맥고언 부인은 말리려 했지만 어머니는 크게 화를 냈다. “전족은 우리가 과거부터 물려받은 기구한 운명”이라며 “만약 전족을 하지 않는다면 딸은 비웃음을 당하고 경멸의 대상이 된다”고 강변했다. 충격을 받은 부인은 집으로 돌아와 남편에게 이를 알렸다.

15년 뒤인 1875년 맥고언 목사는 이른바 ‘반(反)전족 운동’을 펼쳤다. 전족은 낡은 관습이고, 여성을 옭아맨다며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전족은 중국 지식인들에게도 많은 비판을 받았고 차츰 사라져 갔다. 물론 1999년에야 중국에 전족 신발을 생산하는 마지막 공장이 폐쇄됐을 정도로 그 고통의 역사는 길고 지난했다.

미국 컬럼비아대 버나드칼리지 역사학과 교수인 저자가 초점을 맞춘 건 바로 이 시점부터다. 홍콩계 미국인인 그는 전족을 무조건적으로 비판하지 않되, 1000년 가까이 보편화됐던 전족 문화가 왜 어떻게 사라졌는지를 담담하게 추적한다. 고전문학은 물론이고 신문이나 정부 문서, 서양인의 회고록 등을 두루 훑으며 퍼즐을 맞춰 간다.

전족은 참혹한 전통이지만, 반전족 운동이 성공한 배경에는 ‘오리엔탈리즘’이 작용했다는 걸 간과해선 안 된다. 아편전쟁 후 문호를 개방한 중국에 들어온 서양 세력이 자신들의 침략을 정당화하며 전족을 대표적인 중국의 악습으로 규정한 것이다. 반전족 운동에 앞장선 선교사들은 전족의 반대 개념으로 ‘천족(天足)’이란 신조어도 만들어낸다. “하느님이 준 자연스러운 발”이란 뜻으로 자신들의 기독교적 가치가 옳다는 의도다.

이 과정에서 전족에 반대한 중국 지식인들의 행동도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저자가 보기에 그들은 서양의 시각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였다. 당시 대표적 중국 개혁운동가였던 캉유웨이(1858∼1927)는 1898년 상소문을 올려 전족을 국가에서 금지하길 촉구해 다른 지식인들의 동참을 이끌어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전족의 진짜 피해자인 여성들의 목소리는 배제됐다.

물론 그렇다고 저자가 전족을 옹호하는 건 결코 아니다. 오히려 그는 작은 발이 아름답다는 그릇된 환상은 권력자였던 남성들이 만든 ‘에로티시즘’이라 정의했다. 옛 중국의 남성 문인들은 독서와 글쓰기를 할 때 늘 애첩의 작은 발을 쥐고 있었다고 한다. 양갓집 규수들도 남성의 마음을 사로잡으려 ‘소족회(小足會)’를 운영했을 정도다. 모든 게 남성의 취향에 맞춰져 있었다.

저자가 주목하는 건 반 전족 운동 이후 여성들의 삶이다. 중국 명절인 청명절(淸明節)이면 정성껏 작은 발을 단장해 내보이는 게 당연한 줄 알았던 이들. 전족이 폐지되며 그들의 삶은 나아졌을까. 그렇지 않았다. 제대로 대책을 마련하지 않고 갑자기 전족을 없애자 이미 작아진 발은 기형적으로 변했다. 전족을 할 땐 힘들어도 걸을 수 있었지만 전족을 풀자 걷기 힘들 정도로 발이 뒤틀려 버려 더욱 고통을 받았다. 전족이란 관습도, 반전족 운동도 여성들을 위한 게 아니었다.

그런 의미에서 원제인 ‘신데렐라의 자매들(Cinderella‘s Sisters)’은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왕자는 예쁜 구두를 찾은 뒤 거기에 ‘발이 맞는’ 신데렐라를 찾아 헤맨다. 이젠 발이나 들여다보고 있는 왕자의 엉덩이를 걷어차 내쫓아야 할 때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1000년#족쇄#문화#폭력#반전족 운동#관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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