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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문화

꿈틀거리는 색으로 표현한 열정…장 마리 해슬리를 만나다

입력 2022-10-03 13:44업데이트 2022-10-03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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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마리 해슬리: 소호 넘어 소호’
전북도립미술관 전시
꿈틀거리는 색, 요동치는 선들.
프랑스 출신 추상표현주의 작가 장 마리 해슬리(83)가 뿜어내는 예술의 매력이다. 독학 화가였던 해슬리가 예술가로서 보여주고자 했던 것은 ‘열정’이 아닐까. 그의 그림에는 해슬리가 품었던 예술적 갈망이 그대로 배어난다.

프랑스 알자스 지역에서 태어난 해슬리는 14살 때부터 광부로 일했다. 17살이 되던 해, 원인 모를 병으로 투병생활을 이어가던 중 형이 사준 한 책을 읽고 큰 감흥을 느낀다. 빈센트 반 고흐(1853~1890)의 생애를 그린 책이었다. 이것이 해슬리가 성장기에 마주한 그림과의 첫 인연이었다. ‘남은 생애를 예술가로 살아가겠다’고 결심한 해슬리는 현재 50년 넘게 작업하며 색채추상의 대표격 화가로 거듭났다.

전북 완주군 전북도립미술관에서 열리는 전시 ‘장 마리 해슬리-소호 너머 소호’는 해슬리의 작품 전개를 따라간다. 전시는 시기별 다섯 주제로 나눠 해슬리의 드로잉, 회화, 조각 등 112점을 내놨다. 전시를 기획한 이인범 전 상명대 교수는 “예술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데에 해슬리 만큼 좋은 작가가 없다”며 “‘예술은 교육될 수 있는 것인가, 태어나는 것인가’와 같은 근본적인 질문에 대해 고민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장 마리 해슬리-소호 너머 소호’ 전시장 전경, 전북도립미술관 제공


고흐가 해슬리에게 큰 영향을 미친 건 전시장 초입부터 알 수 있다. 프롤로그이자 에필로그인 ‘별의 순간들’ 섹션은 해슬리가 1967년 미국 뉴욕행 이전에 그린 것들을 전시했다.

굵은 필획이 돋보이는 드로잉이나 방문에 그렸던 그림들을 보면, 고흐의 표현주의 화풍을 닮아있다. 그도 그럴 것이, 해슬리는 22살이 되던 해 생전 처음 뮤지엄을 방문했다. 군복무를 위해 모로코와 독일을 전전하다 독일 뮌헨의 노이에 피나코텍 뮤지엄에서 본 고흐의 그림은 해슬리에게 열정의 불을 지폈다.

‘장 마리 해슬리-소호 너머 소호’ 전시장 전경, 전북도립미술관 제공


표현주의에 대한 강한 애착은 이후에도 반복된다. 해슬리는 1962년 프랑스 파리, 1967년 뉴욕으로 이주해 본격 독학 화가의 길을 걷는다. 뉴욕 생활 초기 10년간 해슬리는 ‘무한의 선 Ⅱ’(1978)과 같은 기하학적인 뉴욕미술의 트렌드를 좇았다.

하지만 이내 고흐 정신으로 귀환한다. 1980년대에 그는 소용돌이치는 선들을 그린 ‘성좌’(1987) ‘은하수’(1987) 등 표현주의적 작품들을 내놓는다. 예술가의 길로 인도했던 고흐 정신을 표방하면서 다시금 화가로서의 출발점으로 돌아온 것이다.

‘장 마리 해슬리-소호 너머 소호’ 전시장 전경, 전북도립미술관 제공


이즈음 해슬리에게 가장 간절했던 것은 '타인과의 소통'이었다. 그의 즉흥적이고 충동적인 작업들은 강렬한 시각적 충격을 줬지만, 대중과의 소통에 한계가 있었다. 이때 해슬리의 눈에 꽂힌 건 인간의 신체였다. 해슬리는 주관적인 감정을 절제하고, 인체로 만든 알파벳 형상을 띤 구상 회화 ‘뒤집힌 D’(1989) 등을 그리기 시작한다.

‘장 마리 해슬리-소호 너머 소호’ 전시장 전경, 전북도립미술관 제공


광부와 예술가, 구상과 비구상. 경계를 넘나들던 경험들은 해슬리만의 독자적인 예술 세계를 만들어냈다. 그는 2000년대 이후부터 현재까지 작품 ‘짐노페디’(2007) 등을 통해 자유분방한 필치와 원시적인 색채를 자랑하면서도 나름의 질서가 정립된 절제미를 선보이고 있다. 이 전 교수는 “이제 해슬리의 예술적 실천은 고흐와의 만남이라는 그 기원마저 망각될 정도로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했다”고 평했다.
30일까지. 무료.

완주=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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