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신고 있는 것은 불평등과 환경 파괴의 산물”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9월 3일 03시 00분


코멘트

[책의 향기]
◇풋워크/탠시 E 호스킨스 지음·김지선 옮김/364쪽·2만1000원·소소의책

신발은 세계 산업 시스템의 이면은 물론 빈부 격차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매개체다. ‘사치의 여왕’으로 악명 높았던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필리핀 전 대통령의 부인 이멜다는 8년 동안 한 번도 같은 신발을 신은 적이 없다고 한다. 반면 아프리카 카메룬이나 
르완다 등에 사는 농민들은 신발이 없어 기생충과 자주 접촉하다 보니 치명적인 질병에 쉽게 걸린다. 게티이미지코리아
신발은 세계 산업 시스템의 이면은 물론 빈부 격차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매개체다. ‘사치의 여왕’으로 악명 높았던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필리핀 전 대통령의 부인 이멜다는 8년 동안 한 번도 같은 신발을 신은 적이 없다고 한다. 반면 아프리카 카메룬이나 르완다 등에 사는 농민들은 신발이 없어 기생충과 자주 접촉하다 보니 치명적인 질병에 쉽게 걸린다. 게티이미지코리아
올해 2월 영국 소더비 경매에는 웬만한 예술 작품보다 훨씬 주목받은 출품 목록이 있었다. 다름 아닌 운동화다. 지난해 숨진 미국 패션디자이너 버질 아블로가 만든 ‘루이비통×나이키 에어포스1’ 200켤레가 나왔는데, 총 낙찰가가 2500만 달러(당시 기준 약 329억 원)였다. 한 켤레의 평균 가격이 1억6000만 원쯤 된다.

사실 이런 얘기 별로 놀랍지 않다. 낡아빠진 콘셉트의 스니커즈가 100만 원 가까이 하는 세상. 이젠 ‘스니커테크(스니커즈+재테크)’란 용어도 꽤나 익숙해졌다. 한정판 운동화를 힘겹게 구한 뒤 되팔아 수익을 거뒀다는 얘기도 심심찮게 들린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 등에 기고해온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인 저자는 오랫동안 의류와 제화 취재를 이어왔다고 한다. 관련 TV 다큐멘터리도 제작하는 그는 갈수록 거대화되는 신발 산업의 이면에 숨겨진 현실을 파헤친다. 이 정도 말하면 누구나 짐작하듯, 다국적 기업의 횡포나 열악한 노동 환경 같은 이슈들이다.

왜 하필이면 신발에 주목했을까. 저자는 “세계화의 추동력인 동시에 그 결과물”이 신발이라고 봤다. 신발은 제품 가운데서도 “생산의 세계화를 최초로 경험한 물품 가운데 하나”다. 통신과 운송 기술이 발달하고 제3세계로 저임금 노동시장이 퍼지면서, 신발을 만드는 건 세계적으로 이뤄지는 ‘지구적 공정’이 됐다. 미국에서 디자인하면 아시아에서 제조한 뒤 호주에서 팔리는 식이다. 2019년 기준으로 1년 동안 243억 켤레(하루 약 6600만 켤레)나 생산된다니 양도 어마어마하다.

저자는 휘황찬란한 세계화에도 불구하고 신발을 만드는 작업장은 너무나 열악하다는 점을 고발한다. 익명을 요구한 여성 노동자 셰브넴(가명)의 하루를 따라가 보자(그는 나라도 밝히길 꺼렸다). 1주일에 6일을 일하는 그는 오전 7시에 출근한다. 끝나는 시간은 ‘늦은 밤’. 계약서에는 근무시간이나 여건도 명확하지 않다. (근무일인) 토요일에 쉬면 안 되냐고 했다가 해고당한 동료도 있다. 점심시간은 딱 25분. 일하던 작업대에 그대로 앉아 집에서 싸온 도시락을 먹는다. 그가 만든 부츠는 유럽에서 200유로(약 27만 원)에 팔리지만, 셰브넴에겐 몇 달은 꼬박 일해야 모을까 말까 한 거액이다.

신발공장은 또 다른 위험도 상존한다. 독성 화학물질이다. 학자와 학생들로 구성된 한 비정부기구는 2016년 중국 광둥성에 있는 몇몇 공장에 비밀 감시팀을 보낸 적이 있다. 이들에 따르면 접착제나 세척용 화학물질을 다루는 직원들에게 회사는 너무나 엉성해서 보호 기능이 전혀 없는 장갑과 마스크를 지급했다. 그마저도 주지 않는 공장도 여럿이었다. 당시 자주 코피를 흘리는 등 몸에 이상 증세를 호소하는 현지 직원이 적지 않았다.

신발은 소모품이다. 해마다 200억 켤레 넘게 만든 신발은 언젠가 쓰레기가 되고 생태계를 해치는 요인도 된다. 물론 신발에 열광하는 이들도 이런 사실을 모를 리 없다. 굳이 깊게 신경 쓰지 않았을 뿐. 하지만 만약 이 책을 마주한다면 한 번쯤 떠올려 보자. 신발 수선법과 관련 시민단체를 지원하는 방법까지 세세하게 소개하는 저자의 진심을. 소비재의 문제가 신발뿐만은 아니지만, 진짜 신발을 사랑하는 법을 고민해 보게 한다.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풋워크#불평등#환경파괴의 산물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