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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문화

쿠바 명물 아이스크림 가게는 냉전의 산물이었다[책의 향기]

입력 2022-08-13 03:00업데이트 2022-08-14 0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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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의 역사/마크 쿨란스키 지음·김정희 옮김/472쪽·1만9000원·와이즈맵
이집트, 그리스 로마 신화에는 인간이 다른 포유동물의 젖을 마시는 관행이 자주 등장한다. 기원전 2061년∼기원전 2010년경에 제작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집트 파라오 멘투호테프 2세의 아내 카위트의 대리석 관에는 소젖을 짜는 남자가 양각으로 새겨져 있다(왼쪽 사진). 지중해 동부에 있는 키프로스섬에서 출토된 우유 담는 돌 용기 또한 기원전 2200년경에 만들어졌다. 와이즈맵 제공
피델 카스트로 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1926∼2016)은 알아주는 아이스크림 애호가였다. 친구였던 콜롬비아 소설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에세이 ‘피델의 사적인 초상’에서 카스트로가 점심을 먹은 뒤 아이스크림을 18스쿱(아이스크림 퍼담는 큰 숟가락)을 먹었다고 회상했을 정도다. 광적일 정도인 아이스크림 사랑은 카스트로의 목숨을 앗아갈 뻔도 했다. 끊임없이 그의 암살을 시도했던 미국은 카스트로가 가장 좋아하는 초콜릿 밀크셰이크에 독약을 넣으려고도 했다.

저자는 그리스 창조 신화부터 영국의 인도 식민지배, 미국의 남북전쟁 등 역사적 사건들을 훑으며 우유와 치즈, 버터, 요구르트, 아이스크림 등 유제품의 굵직한 존재감을 살폈다.

왜 하필이면 우유일까. 미국 저널리스트 겸 작가인 저자는 2014년 국내에 출간돼 화제를 모았던 ‘대구’나 ‘소금-세계사를 바꾸다’(2007년) 등 하나의 아이템을 매개로 역사를 풀어내는 책들로 유명하다. 저자는 “오직 인간만이 다른 동물의 젖을 먹는다. 이 사실에서부터 인류사가 시작된다”고 강조한다.

인도가 영국의 식민 지배에 저항했던 수단 중 하나도 우유였다. 영국이 인도를 통치했던 ‘인도 제국’(1858∼1947) 시절, 낙농으로 먹고사는 아난드 지역 농민들은 영국 유제품 대기업 ‘폴슨’에 모든 걸 독점 공급해야 했다. 이에 지역 소작농들은 분노했고, 인도 독립을 위해 싸우던 변호사 사르다르 발라바이 파텔(1875∼1950)이 이를 조직적인 운동으로 확대시켰다. 독립 뒤 초대 부총리가 되는 파텔은 협동조합을 만들어 농부들이 철도로 우유를 운송할 루트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결국 1947년 영국 정부는 아난드 지역의 독점을 철회했다. 저자는 “이 사건은 영국 정부가 결국엔 인도를 떠나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했다”고 짚었다.

아이스크림과 얽힌 미국과 쿠바의 정치적 사건은 또 있다. 1962년 소련이 쿠바에 미사일 기지를 건설하자, 미국은 쿠바에 자국 물품 수출 금지 조치를 내렸다. 쿠바는 경제적으로 큰 위기에 처했는데, 수출 금지 물품에 아이스크림도 있었다고 한다. 이에 카스트로는 아이스크림 관련 산업을 일으키기로 했다. 기술자들을 캐나다로 유학 보내 제조법을 배우게 했고, 스웨덴과 네덜란드에서 관련 기계 설비도 들여왔다. 그렇게 만들어진 결과물 가운데 하나가 현재 수도 아바나 거리의 상징이 된 ‘코펠리아 아이스크림 가게’라고 한다.

저자는 이런 독특한 역사적 사실을 두루두루 짚으면서 우유와 관련된 요리법도 차곡차곡 소개한다. 고대 로마인이 먹었던 생 치즈 ‘무스타셰이’부터 카리브해 지역의 ‘바나나 아이스크림’까지 다양한 레시피가 가득하다. 한때 요리사로도 일한 저자는 “조리법에는 그것을 만든 사회와 그 사회의 질서가 반영돼 있어 그 음식이 식탁에 올랐던 시대의 삶을 말해준다”고 설명한다. 숨겨진 역사적 사실도 배우면서 군침도 삼키게 만드는 책이다.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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