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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문화

[책의 향기]노동자들은 왜 브렉시트를 지지했는가

입력 2022-06-25 03:00업데이트 2022-06-26 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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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우리를 속일지라도/브래디 미카코 지음·노수경 옮김/296쪽·1만7800원·사계절
브렉시트와 샤이 트럼프의 공통점. 분노한 블루칼라 노동자들이 결집해 예상치 못한 정치적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다.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와 트럼프 집권 모두 ‘설마…’ 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 생존경쟁에 시달려 온 이들의 거센 반격에 이는 현실이 돼 버렸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서구 복지국가의 꿀을 빨며 비교적 고분고분하게 살아온 이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영국으로 이주해 현지인과 결혼한 일본인 여성 저자는 노동계층에 속하는 베이비붐 세대 이웃들을 세밀히 관찰하고 이 책을 썼다. 먹물 냄새 풍기는 학자들의 글에서는 도저히 찾아볼 수 없는 생생한 현실 묘사가 압권이다.

트럭을 모는 저자의 남편이 대처리즘과의 일전을 선포하며 생병을 앓는 대목이 특히 눈길을 끈다. 남편은 급작스러운 두통으로 국민보건서비스(NHS)의 무료 진료 서비스를 이용하려고 하지만 대기인원이 너무 많아 수개월째 병원 문턱조차 넘지 못한다. 저자는 돈을 써서라도 민간병원에 가자고 설득하지만 남편은 “NHS를 잃으면 영국이 복지국가였던 시절의 유산을 잃는 거다. 대처한테 지지 않겠다”며 고집을 부린다. 그는 의료재정이 지금보다 풍족하던 시절 NHS 병원에서 말기 암을 치료한 경험이 있다. 저자는 몸뚱이가 전부인 영국 블루칼라 계층에게 무상진료 혜택은 큰 부분을 차지했지만, 신자유주의 정부의 재정긴축이 이를 앗아갔다고 주장한다.

우려스러운 건 이런 흐름이 외국인 혐오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 NHS 병원을 찾는 내국인 대비 이주민 수가 늘어난 데 따른 현상이다. 영국인들이 돈을 내고 의료서비스 질이 좋은 민간병원으로 몰리는 반면, 대출 여력조차 없는 이주민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NHS 병원을 이용하고 있어서다. 사정이 이런데도 극우 인사들은 NHS 재정을 외국인들이 축내고 있는 것인 양 사실을 왜곡하며 블루칼라 계층을 선동한다. 이들이 이민자 통제를 외치며 브렉시트를 지지하고 나선 배경이다. 복지와 경제효율이 상충하는 혼돈 속에서 노동계층과 이주민 사이의 간극이 벌어지는 비극은 결코 남의 일만은 아닐 것이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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