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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문화

두 구절이 짝 이룬 주련… 덕혜옹주 짝은 어디에

임준철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입력 2022-06-02 03:00업데이트 2022-06-03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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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를 영화로 읊다]〈39〉잃어버린 궁궐 주련을 찾아서
영화 ‘덕혜옹주’에서 노년이 돼 귀국한 덕혜옹주(오른쪽)가 추억이 어린 궁궐을 찾아 현판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정진우 감독의 영화 ‘경복궁의 여인들’(1971년)은 고종의 사랑을 엄 상궁에게 빼앗긴 민비의 질투를 그렸다. 민비 쪽 궁녀가 고종과 엄 상궁의 밀회를 염탐할 때 민비의 처지처럼 외로이 걸린 주련 한 짝이 화면을 스쳐 지나간다. 주련(柱聯)은 한시 구절을 새기거나 써서 전통 건축물 기둥에 걸어 놓은 장식물로, 두 구절이 한 짝을 이룬다.

화창한 어느 봄날 학생들과 경복궁을 답사했다. 왕의 후궁이 살던 흥복전 권역의 함화당(咸和堂·咸和는 서경 무일(無逸)편에서 따온 말로 모두 화합한다는 의미)엔 유달리 주련이 많이 걸려 있다. 고종 때 지어져 일제의 경복궁 훼손 시도도 버텨낸 이곳의 주련 중엔 짝이 없는 경우가 눈에 띈다. 현재 함화당에는 전면부터 후면까지 중국 시인들의 시구를 적은 주련 18개가 이어져 있다. 이 중 짝을 잃은 채 걸려 있는 두 번째와 마지막 주련을 사라진 내용과 함께 소개한다.


왕유의 시는 황제의 명을 받아 지은 응제작 중 최고로 꼽힌다.(청, 沈德潛) 특히 주련에 적힌 부분이 그림 같은 경치 묘사로 유명하다.(명, 顧可久) 석연년의 시구를 인용한 마지막 주련은 아름다운 정원을 읊은 시의 일부로 송나라 주희(朱熹)가 표현의 묘미를 극찬한 바 있다.(‘朱子語類’) 정조와 조선의 학자들도 자연의 원리를 담은 시구로 그 가치를 높게 평가했다.

궁궐은 팔작지붕의 위용과 화려한 장식만으로 치장돼 있지 않다. 현판과 주련이 건물의 지향과 운치를 매조진다. 창덕궁에도 같은 내용의 주련들이 걸려 있다. 마지막 주련이 걸린 창덕궁 낙선재(樂善齋)는 덕혜옹주가 일본에서 귀국해 여생을 보낸 곳이다. 허진호 감독의 ‘덕혜옹주’(2016년)는 역사의 수레바퀴 아래 고초를 겪은 덕혜옹주를 그렸다. 덕혜옹주가 마지막 남긴 ‘나는 낙선재에서 오래오래 살고 싶어요. 전하, 비전하 보고 싶습니다’라는 글에서 짙은 회한이 드러난다. 덕혜옹주는 불행한 결혼생활로 종적이 묘연하다 정신병원에서 발견됐다. 주련도 그녀처럼 짝을 잃고 어딘가 버려졌던 것일까. 조그만 돌연못 앞에서 덩그러니 남은 주련의 짝을 찾아 시구를 읊조려 본다.

임준철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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