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이즈 캔슬링 기술의 씁쓸한 쓰임새 [고양이 눈썹]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5월 7일 1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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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4월
2018년 4월
1990년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가 한국을 처음 방문했을 때, 우주 이론 못지않게 그의 휠체어에 있던 소통 장비도 충격적이었습니다. 전신마비에 가까운 장애를 겪는 호킹 박사이지만 소통은 물론 강연도 가능했기 때문이죠.

1990년 9월 / 동아일보DB
1990년 9월 / 동아일보DB
과학기술의 발전은 장애인의 불편함을 개선하는데 큰 도움이 돼 왔습니다. 전동 휠체어와 근력 로봇 같은 장애인 전용 기술도 있지만, 스마트폰 같은 일반 IT 기기도 장애인들에겐 새로운 지평을 열어줍니다. 최근 20여 년 동안 장애인을 도운 ‘일반’ 기술들을 살펴볼까요.

▽문자메시지(1990년대 후반 대중화)

청각 장애인들에게 ‘원격 실시간 의사소통’이라는 혁명을 선물한 기술입니다. 1990년대 초까지는 무선호출기(삐삐)를 통해 약속된 숫자 암호로만 연락을 할 수 있었습니다. 단문메시지(SMS)였지만 스마트폰 이후 메신저 앱이 퍼지면서는 장문에 사진·영상까지 첨부돼 청각 장애인의 소통 영역이 무한대로 확장됩니다. 이전엔 PC통신과 팩스로 소통했지만 유선의 한계가 있었죠.

▽무선 화상통화(2000년 후반 대중화)

아이폰이 국내에 첫 상륙한 직후인 2009년 초로 기억합니다. 당시로서는 상당히 생소한 장면을 지하철역에서 봤습니다. 한 승객이 스마트폰을 세워놓고 수어로 대화를 하는 모습. 물론 상대방도 수어로 대화 중이었죠. 모바일 화상통화는 저도 아직 낯설 때라 한참을 보고 있었는데 그분들은 제가 옆에 있는 줄도 모르고 대화에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두 분의 행복한 표정은 아직도 생생히 기억납니다. 저는 수어를 모르지만, 마치 이렇게 대화하는 것 같았습니다.

“세상 진짜 좋아졌어. 이제 우리도 전화로 통화할 수 있어!”

▽VR(가상현실)·AR(증강현실)

주로 발달 장애인을 위한 교육 기기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직업 가상 체험, 면접 가상 체험 등으로 효과가 좋다고 합니다. VR로는 산 정상 풍광이나 과격한 놀이동산 놀이기구 등 장애인들이 접하기 힘든 곳을 진짜처럼 경험하게 해주죠.

조계사 동자승 VR 체험 / 2019년 5월 / 동아일보DB
조계사 동자승 VR 체험 / 2019년 5월 / 동아일보DB


2021년 열린 도쿄올림픽 주최측은 관중들이 증강현실(AR) 안경을 쓰면 선수 정보와 기록을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을 
준비했습니다. 코로나19로 관중 입장이 금지돼 실제로 사용하지는 못 했습니다. 2020도쿄올림픽 공식 홈페이지
2021년 열린 도쿄올림픽 주최측은 관중들이 증강현실(AR) 안경을 쓰면 선수 정보와 기록을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을 준비했습니다. 코로나19로 관중 입장이 금지돼 실제로 사용하지는 못 했습니다. 2020도쿄올림픽 공식 홈페이지


▽노이즈 캔슬링 (2016년 이후 대중화)

역파동으로 주변 소음을 제거하죠. 1970년대 1980년대 열차 기관사와 항공기 조종사를 위해 미국 보스와 독일 젠하이저가 개발한 기술입니다. 기관사와 조종사들의 직업병 중 하나는 소음성 난청인데 이를 해결하고자 한 기술.

이를 대중화한 것은 일본 소니로 기억하는데요, 1990년대 이미 기술을 확보했으나 2016년 블루투스 무선 헤드폰에 이 기술을 적용하면서 인기를 끌기 시작했습니다.

노이즈 캔슬링은 소리를 없애는 기술인데 장애인과 무슨 상관이냐고요? 휠체어를 타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장애인들이 많이 쓴다고 합니다. 빤히 쳐다보는 눈길이야 챙모자를 쓰거나 눈을 감고 안 보면 그만인데, 궁시렁대는 ‘소리’는 피할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한가할 때 타지 왜 공간을 많이 차지하느냐”는 투의 중얼거림이 제일 많이 들린다는데요, 이럴 때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이 아주 유용하다고 합니다. 불편한 소리를 안 듣게 해주니까요. 많은 장애인의 필수 아이템이라고 합니다. 혁명적인 IT의 별난 쓰임새 같아 씁쓸합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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