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역행 ‘고구마토크’로 진성 마니아층 파고든 동갑내기 ‘찐’ 고교동창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5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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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론 음악방송 ‘디깅 온 에어’ 진행 가수 나얼-작곡가 에코브릿지

대놓고 ‘아재 토크’ 술술 푸는 나얼
“옆집에서 방송할 것 같은 방송…
사람얘기 듣고싶은 외로운 분들에 건강한 음악 소개한다는 철학 있죠”


‘디깅’처럼 선곡 남다른 에코브릿지
“누군가 툭 음악을 던져줬을때
오는 감흥 아시는 분들을 위해 다른 방송서 듣기힘든 곡 줄줄이”


“안녕하세요…. 디깅 온 에어…. 시작합니다….”

0.5배속으로 돌린 듯한 두 중년 남성의 느린 말투, 축축 처지는 저음으로 문을 여는 프로그램이 있다. 음악 플랫폼 멜론의 음악방송 ‘디깅 온 에어’다. 매주 토요일 오후 7시 새 에피소드를 공개한다. 진행자는 싱어송라이터 나얼(본명 유나얼·브라운 아이드 소울, 전 브라운 아이즈 멤버)과 작곡가 에코브릿지(본명 이종명·최백호 ‘부산에 가면’, 브라운 아이드 소울 ‘Nothing Better’ 작곡). 대놓고 ‘아재 토크’를 지향한다. 지상파 라디오에서 이 정도 ‘텐션’이라면 경고 조치라도 받았을 법한데…. 좋은 음악과 잔재미 토크 짝짜꿍으로 진성 마니아를 모았다. 7일, 방송 50회와 1주년을 맞는다.

“수많은 시간을 견디고 지키고 이겨낸 아저씨들의 위대함(?)을(웃음) 스스로 칭찬하고 힘을 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나얼)

빠르고 자극적인 콘텐츠가 난무하는 시대. 뜸 들이는 ‘고구마 토크’로 밀어붙이는 이들의 항변이 궁금했다. 최근 서면으로 두 사람을 만났다.

나얼과 에코브릿지는 “편안한 일상복을 입고 오후 2시 정도에 서울 강남구의 전문 스튜디오에서 만나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놓고 헤드폰 끼고 녹음에 임한다”고 설명했다. 나얼의 자평은 이렇다.

“팬티만 입고 듣는 아무 부담 없는 방송, 옆집에서 방송할 것 같은 방송.”

두 사람은 1978년생 동갑내기 서울 선덕고 동창. 친구와 함께여서일까. 과묵하며 낯가리기로 이름난 나얼도 ‘디깅 온 에어’에서는 날것의 이야기부터 개그까지 술술 푼다.

“종명이는 학창 시절부터 공부를 잘하고 똑똑했습니다. 제가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에 종명이가 옆에 있는 것만으로 아주 든든합니다. 음악에 대한 지식과 음악을 대하는 태도, 음악을 이해하는 감성 등 아주 배울 점이 많고 훌륭한 친구입니다.”(나얼)

“나얼이의 가장 큰 장점은 음악에 대한 순수한 진지함이에요. 사실 직업으로 오랜 시간 음악을 접하게 되면 처음의 순수함이나 경외심은 많이 없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나얼이는 그런 부분을 많이 간직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도 더 동화되고 좋은 에너지를 더 받아 가요.”(에코브릿지)

멜론의 음악방송 ‘디깅 온 에어’ 진행 1주년을 맞는 가수 나얼(왼쪽 사진)과 작곡가 에코브릿지. 에코브릿지는 “가볍게 시작했지만 요즘 제가 하는 여러 가지 일 중에 가장 재밌는 일이 돼버렸다”고 말했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 제공
멜론의 음악방송 ‘디깅 온 에어’ 진행 1주년을 맞는 가수 나얼(왼쪽 사진)과 작곡가 에코브릿지. 에코브릿지는 “가볍게 시작했지만 요즘 제가 하는 여러 가지 일 중에 가장 재밌는 일이 돼버렸다”고 말했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 제공
두 사람 모두 ‘라디오 키드’다. 나얼은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MBC FM ‘두 시의 데이트’ ‘별이 빛나는 밤에’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즐겨 들었다고. 에코브릿지는 CBS FM ‘0시의 재즈’ 마니아였다. 음악을 파고든다는 뜻의 ‘디깅(diggin‘)’을 내세운 만큼 선곡도 남다르다. 다른 방송에서 듣기 힘든 1960, 70년대 미국 R&B 그룹 부커 티 앤드 더 엠지스, 오제이스, 스타일리스틱스의 음악을 줄줄이 튼다. 샤카 칸, 카펜터스, 글래디스 나이트, 마이클 볼턴까지 20세기 음악의 소용돌이다.

“너무 어렵지 않게, 꼭 들으면 좋고 화성과 멜로디와 리듬의 균형이 비교적 잘 맞는 건강한 음악들을 소개해야 한다는 철학이 있습니다.”(나얼)

뜻밖에 순항 중인 아재 음악 토크. 앞으로의 타깃은 어떤 사람들일까.

“멜론 차트 100위 안에 있는 곡만 듣는 분들, 사람 얘기가 듣고 싶은 외로운 분들, 1990년대까지가 진짜 음악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나얼)

“직접 듣고 싶은 음악을 골라 듣는 재미도 있지만 누군가 툭 음악을 던져줬을 때 오는 감흥은 또 다른 음악의 재미라고 생각해요. 그런 느낌을 아신다면 저희 디깅 온 에어를 들으시면 됩니다.”(에코브릿지)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나얼#에코브릿지#고구마토크#디깅 온 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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