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세트 의자 우산… 그의 손길에 일상은 ‘낯선 색’ 예술을 입는다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4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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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전당 마이클 크레이그마틴展
아일랜드 출신 英 현대미술의 거장… “내 생애 가장 큰 규모의 회고전”
1970년대부터 만든 150여점 선봬… 단순하게 표현한 사물에 강렬한 색
반복성 추구하면서도 오브제 변주… 코로나 격리 중에도 ‘Zoom’ 완성

가로 101.6cm, 세로 254cm의 캔버스 8개에 각기 다른 사물을 클로즈업해 그린 ‘무제’(2001년) 연작. UNC 제공
가로 101.6cm, 세로 254cm의 캔버스 8개에 각기 다른 사물을 클로즈업해 그린 ‘무제’(2001년) 연작. UNC 제공

“무엇이든 예술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술에는 그 어떤 위계도 없거든요.”

우산, 냉장고, TV…. 일상 속 평범한 사물들이 영국 현대미술의 거장 마이클 크레이그마틴(81·사진)에게는 예술이 된다. 그는 공장에서 대량생산돼 누구나 소유할 법한 사물에 낯선 색을 입혀 일상과 예술의 경계를 허문다. 예상하지 못한 색으로 채워진 분홍색 감자튀김처럼 그의 손을 거친 사물은 어쩐지 낯설고 특별해 보인다.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8일 개막한 ‘영국 현대미술의 거장: 마이클 크레이그마틴展’에서는 그의 1973년 초기작부터 올해 최근작까지 회화와 디지털 미디어, 판화 등 원화 150여 점을 선보인다. 7일 전시장에서 만난 크레이그마틴은 “내 생애 가장 큰 규모로 여는 회고전이다. 전시장이 내 인생 전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살아 있는 원화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인생에서 평생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일랜드 출신인 크레이그마틴은 ‘영국 현대미술의 아버지’로 불린다. 1974년부터 2000년까지 영국 런던 골드스미스대 교수로 재직하며 데이미언 허스트, 줄리언 오피 등 젊은 영국 예술가들(YBA·Young British Artists)을 양성했기 때문이다. 그가 제자들에게 강조한 건 단 한 가지. “자신만의 독창적인 스타일을 추구하라”는 것이었다.

가로 208.3cm, 세로 289.6cm의 알루미늄판에 아크릴로 그린 ‘카세트’(2002년). UNC 제공
가로 208.3cm, 세로 289.6cm의 알루미늄판에 아크릴로 그린 ‘카세트’(2002년). UNC 제공
검은 윤곽선으로 단순하게 표현한 사물 위에 강렬한 색을 채워 넣는 건 크레이그마틴의 스타일이다. 전통회화의 원칙을 고수하지 않는 파격성도 지녔다. 가로 208.3cm, 세로 289.6cm 크기의 거대한 알루미늄판 위에 아크릴로 작업한 ‘카세트’(2002년)가 대표적이다. 그는 이 작품에서 네 면의 가장자리를 꽉 채울 정도로 거대한 카세트테이프를 그렸다. 새빨간 배경에 비스듬히 세워진 카세트테이프는 진한 초록색으로 가득 채웠다. 오브제를 캔버스 정중앙에 배치하거나 가장자리에 치우치게 그려서는 안 된다는 전통회화의 원칙을 비튼 것. 그는 일상의 사물을 톡톡 튀는 색으로 채우는 반복성을 추구하면서도 오브제를 변주하며 예술세계를 확장해 왔다. 1990년대 와인 따개, 안경, 의자 등 평범한 사물을 소재로 삼았던 그는 2000년대 글자에 주목했다. 그는 “단어를 구성하는 알파벳을 하나씩 떼놓고 보니 고유의 윤곽선과 공간이 보였다”고 설명했다. 그의 글자회화에서는 알파벳이 열을 맞추지 않는다. 서로 엇갈린 채 뒤섞인 글자회화 연작의 제목은 ‘무제’. 관람객이 각자 해석할 여지를 남겨두기 위해서다.

‘줌(Zoom)’(2020년) 200cmX225cm UNC 제공
‘줌(Zoom)’(2020년) 200cmX225cm UNC 제공
팬데믹이 불러온 세상은 그에게 새로운 오브제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그의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 오히려 그는 “격리가 즐거웠다”고 말한다. 반쯤 열린 랩톱 컴퓨터 4대를 지그재그로 엇갈리게 배치해 알파벳 ‘Z’를 표현한 ‘줌(Zoom)’(2020년)은 격리 기간 중 완성했다. 출구에 설치된 디지털 자화상 ‘무제’(2022년)는 가장 최신작이다. 액정표시장치(LCD)에 그의 얼굴을 상징하는 검은 윤곽선을 그리고 선 사이사이를 형형색색으로 채우는 영상이 흐른다. 단 한순간도 같은 색으로 채워지지 않아 살아 있는 그림 같다. 전시의 주제 ‘지금 이 순간(Here and Now)’처럼 81세 노장은 우리가 무심하게 놓친 순간의 아름다움을 색으로 기록해 왔다. 8월 28일까지. 1만3000∼2만 원.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카세트 의자 우산#예술의 전당#마이클 크리이크마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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