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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문화

작업공간이 곧 작품… 원본 없는 ‘伊런 전시’

입력 2021-12-01 03:00업데이트 2021-12-01 0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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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일렛페이퍼: 더스튜디오’ 전시… 伊 ‘사진잡지 본사’ 스튜디오 재현
현지서 가져온 컵-거울 등 배치… 벽면엔 잡지 작품 인화해 걸어
‘이미지의 순환’ 목표 잘 보여줘
토일렛페이퍼의 스튜디오를 재현해 놓은 전시 공간. 토일렛페이퍼는 이미지를 수없이 재활용하며 예술의 확장성을 실험해 왔다. 전시장에는 변기 물 내리는 소리, 팩스 보내는 소리 등 일상의 소리가 재생되는데 환상적이고 초현실적인 느낌의 공간과 대비된다. 현대카드 제공
유명 예술가의 이름을 보고 전시장을 찾았는데 정작 원화(原畵)가 별로 없어 실망한 경험이 있는 관람객이 적지 않을 것이다. 2019년 ‘야수파 걸작전’이나 올해 ‘아트 오브 뱅크시’ 전시는 복제본이 다수 포함돼 관람객으로부터 아쉬움을 샀다. 양질의 전시를 찾는 관람객들에게 원본 출품 여부는 중요한 조건이다. 하지만 그럴듯한 원본이 없음에도 작가들의 예술관을 잘 표현한 전시도 있다.

서울 용산구 현대카드 스토리지에서 지난달 8일 열린 ‘토일렛페이퍼: 더스튜디오’ 전시는 ‘이미지의 순환’이라는 작가들의 목표를 잘 보여준다. 전시는 이탈리아 밀라노에 자리 잡은 사진잡지 토일렛페이퍼의 본사 스튜디오를 재현했다. 올 9월 밀라노 디자인 위크 이후 처음 대중에 선보이는 작품이다.

공간을 통째로 재현한 데는 이유가 있다. 토일렛페이퍼는 예술가 마우리치오 카텔란(61)과 사진작가 피에르파올로 페라리(50)가 2010년 창간한 잡지다. 이번 전시도 두 작가가 주도했다. 잡지 토일렛페이퍼는 ‘쉽게 쓰고 버리는 화장지처럼 누구나 편하게 볼 수 있는 잡지’를 콘셉트로, 글이나 광고 없이 이미지만으로 구성됐다. 전시를 담당한 김현경 큐레이터는 “토일렛페이퍼는 삶의 환경 속으로 예술을 다양하게 재활용하는 작업을 시도해 왔다. 작업 공간을 보여주는 건 자신들의 작품세계를 드러내는 것과 같다”고 설명했다.

전시장은 화려하다 못해 과하게 느껴지는 색상과 무늬로 가득하다. 이탈리아 실제 스튜디오의 입구, 거실, 주방, 정원, 복도 등이 재현된 공간 벽면에는 잡지에서 선보인 작품 사진들이 인화돼 있다. 빨간 립스틱을 든 남성들, 살아 있는 개구리를 넣은 햄버거, 한쪽 날개가 가위로 잘릴 위험에 처한 카나리아 등…. 강렬한 원색과 파격적인 소재가 눈길을 잡아끈다. 전시장 한편에는 실제 스튜디오 내부를 담은 영상이 재생되고 있다. 원스튜디오에서 가져온 컵, 거울, 의자, 소파 등 500여 점의 오브제들도 곳곳에 놓여 있다.

카텔란의 예술 활동을 살펴보면 이번 전시 철학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그는 2019년 미국 마이애미에서 열린 아트바젤에서 페로탕 갤러리 벽면에 바나나를 붙인 작품 ‘코미디언’을 선보였다. 작품은 약 1억5000만 원에 팔렸는데, 전시 마지막 날 한 행위예술가가 바나나를 먹어버렸다. 잠시 후 전시 관계자가 그 자리에 새로운 바나나를 붙였다. 작품은, 중요한 건 바나나가 아니라 아이디어라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이와 함께 그 자체로는 예술적 가치가 없는 대상이 작가의 손을 통해 시장에서 거래되는 과정을 풍자한 것으로 평가된다.

토일렛페이퍼 작품은 인쇄나 복사와 뗄 수 없는 사진이기에 회화 등 다른 예술장르에 비해 원본의 가치가 덜 중요하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이번 전시는 일상용품과 예술품의 경계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을 나눌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내년 2월 6일까지. 4000∼5000원.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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