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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문화

벼랑길 도는 ‘원주율’ 363m… 아찔한 가을에 간담 서늘

입력 2021-11-06 03:00업데이트 2021-11-08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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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야기]강원 원주
수령 800년 반계리 은행나무 우뚝
소금산 그랜드밸리 레저단지 탈바꿈
절정 치닫는 치악산 구룡사 단풍
원주 소금산 그랜드밸리에 설치되고 있는 ‘소금잔도’(오른쪽 벼랑의 다리길)와 전망대(왼쪽). 12월 완공을 목표로 현재 막바지 공정이 진행 중이다.
《강원도 18개 시군 중 유일하게 두 자릿수 인구 증가율을 보이는 원주시는 성장하는 도시다. 춘천, 강릉과 함께 강원 3대 도시로 꼽히는 원주는 인구수도 35만6000여 명(2021년 9월 현재)으로 도내에서 제일 많다. 사람이 늘어난다는 건 삶터의 환경이 그만큼 좋아짐을 뜻한다. 풍수설로는 땅의 기운(지기·地氣)이 살아남을 말한다. 단풍의 계절 가을의 푸근함과 함께 생동감을 체험하는 여행지로 원주를 선택한 이유다.》

○반계리 은행나무에 웬 종유석?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반계리 은행나무(수령 800년). 노거수임에도 불구하고 나뭇잎은 앙증맞은 크기인데, 여전히 나무가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한다.
수도권에서 영동고속도로를 이용해 원주로 여행하는 이들이라면 문막읍의 ‘원주 반계리 은행나무’와 먼저 인사를 나누기를 권한다. 천연기념물 제167호로 지정된 이 은행나무는 수령 800년으로 추정된다. 높이 32m, 둘레 16.27m에 달하는 웅장한 규모로 양평의 용문사 은행나무와 어깨를 견준다. 샛노란 단풍이 뫼산(山)자 형태로 물든 모습은 마치 거대한 등불을 밝힌 듯 찬란한 자태를 뽐내고 있는데, 경북 예천의 반송 석송령을 연상시킨다.

반계리 은행나무 줄기에 달린 진귀한 모양의 유주(乳柱).
나무는 원 줄기가 고사한 뒤 새로 생긴 여섯 갈래 줄기가 마치 한 몸처럼 자라고 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6·25전쟁 등 온갖 역사의 풍상을 거친 노거수가 피워내는 은행잎치고는 앙증맞은 크기다. 지금도 젊은 나무임을 의미한다. 가지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석회암 동굴의 종유석처럼 땅을 향해 자라는 ‘유주(乳柱)’들이 곳곳에 나 있다. 은행나무 유주에 대해선 낙타의 혹처럼 생성된 ‘비상식량 주머니’, 뿌리 호흡만으로 모자란 숨을 보충하기 위해 허공에 드러낸 기근(氣根), 상처 난 곳을 자가 치유한 흔적 등 여러 견해가 제기된다.

명당 터에 자리 잡은 데다 생명 창조와 양육의 이미지가 짙은 이 나무에는 전설도 따른다. 고승이 이곳을 지나다 물을 마신 후 지팡이를 꽂아 놓은 것이 나무가 됐다고도 하고, 나무에 거대한 백사(白蛇)가 수호신처럼 지키고 있어서 이곳 마을 사람들이 신성시했다고도 한다. 가을에 이 나무에 단풍이 일시에 들면 다음해는 반드시 풍년이 든다는 속설도 전해진다.

○원주, 소금산 그랜드밸리로 대변신

소금산 그랜드밸리의 출렁다리. 높이 100m, 길이 200m로 보는 것만으로 아찔함을 느끼게 한다.
반계리 은행나무에서 섬강 물줄기를 따라 북상해 ‘소금산 그랜드밸리’로 향한다. 1985년 국민관광지로 지정된 원주 간현관광지가 새롭게 변신하고 있는 곳이다. 소금산 아래 섬강과 삼산천의 합수(合水) 지점에 자리한 이곳은 2018년 개장 당시 국내 최장의 출렁다리(200m)로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고, 이어서 12월이면 잔도(棧道)와 전망대, 울렁다리, 케이블카와 에스컬레이터, 글램핑장 등을 갖춘 대규모 레저단지로 또다시 탈바꿈하게 된다.

소금산 그랜드밸리 코스는 출렁다리부터 시작된다. 모두 578개의 나무 계단을 밟고 올라서면 두 개의 절벽 사이에 놓인 높이 100m의 출렁다리가 아찔하게 펼쳐진다. 격자형으로 꾸민 바닥으로 발아래가 훤히 내려다보이고 다리가 흔들거려 간담이 서늘해지지만, 기암 준봉이 병풍처럼 드리우고 맑디맑은 심상천을 먼 거리로 감상하면 두려움은 어느새 사라지고 환상적인 느낌을 갖게 된다.

출렁다리를 건너면 소금산 정상 쪽으로 이어지는 ‘하늘정원’ 덱이 있고, 이어서 곧 개장되는 소금잔도와 전망대, 울렁다리가 차례로 나타난다. 소금산 정상부 바로 아래 200m 높이의 벼랑을 끼고 도는 소금잔도(363m)는 중국 장자제(張家界)의 유리잔도 못지않게 아슬아슬한 길이다. 현재 막바지 공정이 진행되고 있는 소금잔도를 건너면 전망대가 기다리고 있다. 암벽에 위태위태하게 매달린 듯한 전망대 자체가 공포감을 불러일으키는데, 360도로 주변 풍경을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다리를 건너는 게 아찔해 가슴이 울렁거린다는 울렁다리는 출렁다리보다 2배 더 긴 404m로 국내 최장 보행 현수교로 기록된다. 울렁다리를 건너면 에스컬레이터로 내려올 수 있다.

원주시 관계자는 “소금산 그랜드밸리 건설로 원주가 군사도시라는 옛 이미지를 탈색하고 완벽한 문화관광도시로 태어날 것”이라고 기대했다. 한편 소금산 그랜드밸리에서는 특별한 밤을 보낼 수 있다. 출렁다리 아래 바위를 배경 삼아 조성된 미디어파사드 공연장에서는 밤마다 ‘나오라쇼(Night of Light Show)’가 펼쳐진다. 가로 250m, 세로 70m 크기의 자연 암벽에다 빔 프로젝트를 활용해 입체 영상을 투사하는 방식이다. 현재 원주의 대표적인 보은 설화인 ‘은혜 갚은 꿩’을 소재로 한 영상물과 최대 60m까지 쏘아 올리는 형형색색의 음악분수 쇼가 펼쳐지고 있다.

○절정으로 치닫는 치악산 단풍

치악산 구룡사지구의 세렴폭포. 구룡사에서 세렴폭포까지는 길이 평탄해 산책하듯이 단풍을 즐길 수 있다.
원주에서 가을의 진미인 단풍 구경을 빼놓을 수 없다. 원주를 동서로 갈라놓은 섬강을 기준으로 동쪽의 구룡사(소초면 학곡리) 단풍과 서쪽의 뮤지엄산(지정면 월송리) 단풍은 각기 색다른 특징이 있다.

먼저 치악산자락의 구룡사 단풍은 한창 물들어가고 있는 중이다. 구룡사 사천왕문 옆에 들어선 수령 200년인 은행나무가 노란 잎으로 가을 방문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본격적인 단풍은 구룡사를 지나 비로봉까지 이어지는 등산로에서 즐길 수 있다. 특히 아홉 마리 용의 전설이 얽혀 있는 구룡소에서 2단 폭포로 유명한 세렴폭포까지는 경사가 거의 없어 산책을 하듯 단풍을 즐기기에 좋은 코스다. 구룡사지구의 단풍은 산 정상과 아래에서 동시에 단풍이 들기 시작해 산의 중턱에서 마지막을 치장하는 게 특징이라고 한다. 한편 1400년의 역사를 지닌 구룡사는 사시사철 푸른 소나무 숲으로 둘러싸여 있다는 점도 단풍과 대조돼 돋보인다. 사찰 건물 내 대부분이 강원도 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뮤지엄산의 야외에 조성한 조각품과 주변 단풍.
구룡사 단풍이 인공의 손길을 타지 않은 자연미가 있다면, 뮤지엄산의 단풍은 인공과 자연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예술성을 갖추고 있다. 원주 오크밸리의 골프 빌리지 안쪽에 위치한 이곳은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디자인한 미술관이다. 야외에 설치된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들의 조각품이 주변의 곱디고운 단풍나무와 어울리고, 그 뒤로 이어지는 산의 풍경과도 자연스럽게 조화돼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전혀 부자연스럽다는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다.

뮤지엄산은 휴식과 명상을 원하는 이들을 배려한 ‘명상관’과 ‘제임스터렐관’을 따로 갖추고 있다. 특히 빛과 공간을 이용하는 설치미술가이자 심리분석가인 제임스 터렐의 작품은 오감을 뛰어넘어 육감을 자극하는 듯하다. 영성을 중시하는 퀘이커교도인 그의 작품 공간에 빨려 들어가다 보면 인체의 백회(정수리 부분)와 인당(양 눈썹 사이), 그리고 내면의 자아가 깨어나는 듯한 자극을 받게 된다. 예술을 통한 명상 활동이 자연스럽게 이뤄지도록 한 것이다.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치악산 자락의 단풍과 뮤지엄산의 단풍을 모두 즐기기를 권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원주의 상징인 치악산 산행도 해볼 만하다. ‘치가 떨리고 악이 받친다’고 소문난 치악산 산행을 어려워하는 이들을 위해 산 아랫자락을 연결한 둘레길(전체 11개 코스 139.2km)이 올해 6월 개통됐다. 이 중에서도 마지막 제11코스(한가터길 9.4km)는 길이 평탄해 산책을 하듯 산행을 즐길 수 있다. 야자 매트를 깔아놓은 길을 걷다 보면 잣나무 숲과 화전민이 살던 터 등을 볼 수 있고, 저 멀리 원주가 성장하는 도시임을 알리는 원주혁신도시 등이 내려다보인다.




글·사진 원주=안영배 기자·풍수학 박사 oj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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