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죽은 식물 돌보는 표본실의 식물학자들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9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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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따니스트/마르 장송, 샤를로트 포브 지음·박태신 옮김/320쪽·1만8000원·가지

“파리 사람들은 파리 식물원 뒤쪽에 한 근엄한 건물로 서 있는 이 식물표본관의 이름이나 존재를 알지 못할뿐더러….”

서문의 일부다. 이 표현처럼 도시 사람들에게 익숙한 것은 동물원 또는 식물원 풍경이다. 식물표본관은 낯선 곳이다. 이 공간에서 전문가들이 부서지기 쉬운 마른 잎과 열매를 다루고, 라벨 작업을 하고, 새로운 발견의 ‘유레카’를 외친다.

식물표본 800여만 점을 보유한 프랑스 국립 파리식물표본관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식물학 자료를 소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저자는 이곳의 총괄 책임자를 지낸 식물학자 마르 장송이다. 조경사이자 작가인 샤를로트 포브가 공동 저자로 참여했다. 이 책은 식물학의 세계를 자전적 에세이 형식으로 안내했다. 식물계통학의 선구자인 투른포르, 생물의 이름을 나타낼 때 속명과 종명을 함께 쓰는 이명법(二名法)을 만든 린네, 아프리카 세네갈을 탐험한 뒤 엄청난 분량의 표본을 남긴 아당송, 박물학자이자 진화론자인 라마르크 등 초창기 식물학자들이 등장한다. “정원사는 식물을 보살피고 식물의 삶을 유지시키는 반면, 식물학자들은 식물을 자르고 식물의 죽음을 관찰해 생물계 속에 제대로 자리 잡게 만드는 사람이다. … 나의 동료 대부분이 그렇듯 린네나 투른포르는 분명 힘들여 제라늄을 키우는 사람은 아니었을 것이다.”

책에 언급되는 학자들의 이름과 업적이 앞부분에 실려 있다. 이를 좀 꼼꼼히 읽어둬야 필자가 식물학 자체와 위대한 학자들에게 느끼는 다양한 감정에 공감하기 쉽다.



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표본실의 식물학자들#보따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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