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슬립 대비해 조총 배우자”…MZ세대가 만든 박물관 콘텐츠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8월 29일 14시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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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슬립에 대비해서 조총을 배워야 한다는 건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논리적이고 타당한 주장이다.”

지난달 16일 국립진주박물관 유튜브 채널에 게시된 ‘타임슬립 대비, 조총을 배우자’는 영상의 시청자 댓글이다. 박물관이 풍기는 진중한 느낌과 달리 엉뚱한 제목으로 궁금증을 자아내는 이 영상은 21만 회가 넘는 조회수를 기록했다.

지난해 11월부터 국립진주박물관은 한국 역사 속 총통, 조총 등 화약무기와 그것이 사용된 전투를 소재로 한 시즌제 영상 콘텐츠 ‘화력조선’을 선보이고 있다. 밀리터리 유튜브 채널 ‘건들건들’과 함께 제작한 이 콘텐츠는 올해로 두 시즌을 진행했다. 콘텐츠를 기획하고 출연까지 한 김명훈 국립진주박물관 학예연구사(31)는 27일 동아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내가 낸 세금이 제대로 쓰이고 있는 것 같다, 진주박물관 일 잘 한다는 댓글을 보면 뿌듯하다”고 말했다.

전시를 기획해오면서 그는 젊은 세대가 박물관에 거리감을 느끼고 있다고 생각했다. 김 학예사는 “미술관이나 갤러리에서 데이트하는 경우는 많은데 박물관 데이트는 어색하다”며 “전시를 온라인 콘텐츠로 만들어 젊은 층에게 쉽게 알리고 싶다고 생각해왔다”고 전했다. 그러던 지난해 팬데믹의 영향으로 온라인 전시 콘텐츠를 만들 기회가 찾아왔다. 임진왜란 전문 박물관이라는 국립진주박물관의 정체성에 따라 주제는 총통, 조총과 같은 조선의 소형화약무기로 정해졌다. 하지만 문제는 이것의 전달방식이었다.

의외로 그는 답을 쉽게 찾았다. “킹덤, 명량 등 역사를 활용한 영상 콘텐츠가 호응이 좋은 것을 보면서 유튜브 콘텐츠를 제작하기로 결정했죠.” 그 자신을 포함한 젊은 층들에 익숙한 것을 고민하다보니 답이 저절로 떠오른 것.

하지만 화력조선의 성공에는 눈길 가는 제목으로 젊은 세대를 영상으로 이끈 건들건들의 역할도 있었다. 타임슬립뿐만 아니라 젊은 세대가 즐기는 온라인 게임 ‘리그오브레전드’의 플레이어 분류 중 하나인 ‘원딜’을 제목으로 차용했다. 총이나 활 등 원거리 무기를 사용하는 플레이어의 특성을 조총병과 엮은 것. 시청자들은 “원딜 두 글자만으로 영상에 들어올 가치가 생겼다”는 반응을 보였다. 건들건들 채널을 제작한 우라웍스의 정경찬 작가(36)는 “박물관의 사업인데 이런 제목을 달아도 괜찮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면서도 “젊은 세대들이 해당 게임을 즐기는 만큼 많은 분들이 영상을 찾을 거라고 믿었다”고 전했다.

이들은 콘텐츠의 질을 높이는 데에도 노력을 기울였다. 당시 전투 장면들을 생생하게 재현하기 위해 갑옷과 무기를 최대한 똑같이 구현했다. 정 작가는 “제대로 된 조선시대 찰갑(札甲·가죽 조각을 끈으로 엮어 만든 갑옷)이 없어 제가 직접 꼬박 열흘을 만들었더니 손가락 인대를 다치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들의 노력을 반영하듯 1467년 함경도 지역의 만령전투, 드라마 ‘킹덤’ 속 ‘오연자포’에 관한 영상은 각각 56만 회와 30만 회가 넘는 조회수를 기록했다.

화력조선은 이달로 시즌2를 마무리한다. 두 시즌을 거치며 그들은 어떤 마음일까.

“여행으로 들른 곳에 우연히 박물관이 있어서 방문하는 게 아니라 가고 싶어지는 박물관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화력조선이 그러한 역할을 해줄 거라고 믿어요. 내년 시즌 3를 기대해주세요.”(김 학예사)

“한정된 영상 재생시간으로 충분히 보여드리지 못한 부분이 많아요. 앞으로 잘 알려져 있지 않거나 잘못 알려져 있는 역사들을 시각화해서 제대로 전달해드리기 위해 노력할게요.”(정 작가)

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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