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승려 의상 출가… 왕실 사찰 추정
2700여점 발굴 유물중 32점 첫 공개
옷 주름 정교하게 표현 ‘금동불입상’
불교조각 정수 ‘석조상’ 등 전시
경북 경주시 황복사 터에서 발굴된 금동불입상. 10cm 내외의 작은 크기이지만 표정과 옷 주름이 정교하게 표현돼 있다. 국립경주박물관 제공
온화한 표정의 부처가 양손을 펼쳐 보인다. 당장이라도 따뜻하게 반겨줄 것 같다. 오른손을 위로 들고 왼손을 아래로 내린 부처의 손 갖춤은 두려움을 없애고 소원을 들어준다는 뜻이다. 통일신라시대에 제작된 후 1000여 년의 세월이 흘러 금도금은 벗겨져 있다. 한 손에 들어오는 약 15cm 크기의 금동불입상(金銅佛立像)은 표정부터 U자나 Y자 모양의 옷 주름까지 정교하게 표현돼 있다.
국립경주박물관이 경내 수장고에서 진행하는 ‘전(傳) 황복사 터 출토 신자료’ 특별 공개전이 27일 열린다. 이번 전시는 매장문화재 조사기관 성림문화재연구원이 신라시대 사찰 황복사(皇福寺) 터에서 발굴한 유물을 공개하는 자리다. 황복사 터 출토 유물이 전시로 공개되는 건 처음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2016년부터 올해 4월까지 5차례에 걸쳐 발굴된 2700여 점의 황복사 터 유물 중 금동불입상 7점 등 총 32점을 선보인다.
황복사는 신라 승려 의상(625∼702)이 654년 출가한 절로 알려져 있다. 황복사 근처 낭산(사적 제163호)은 신라 성산(聖山)으로, 선덕여왕릉, 사천왕사 터, 능지탑 등 왕실 관련 유적이 산재해 있다. 낭산 동쪽 기슭의 황복사 터에서는 1928년 일본인 학자 노세 우시조(1889∼1954)에 의해 금당(金堂) 기단석(基壇石)의 십이지신상이 발굴됐다. 1942년 황복사 터 삼층석탑(국보 제37호) 해체 때 발견된 금동사리함 뚜껑에서 ‘종묘성령선원가람(宗廟聖靈禪院伽藍·죽은 왕의 신위를 모신 종묘의 신성한 영령을 위해 세운 가람)’이라는 글자가 나와 왕실 사찰로 추정된다.
불법을 수호하는 신장이 조각된 석조상. 입체적으로 조각돼 마치 신장이 걸어 나올 듯한 느낌을 준다. 국립경주박물관 제공전시에서는 통일신라시대 불교 조각의 정수를 느낄 수 있는 석조상을 감상할 수 있다. 석판에 조각된 석조상은 반쯤 파손됐지만, 갑옷을 입은 무장(武將)이 악귀 생령(生靈)을 깔고 앉은 모습이 묘사돼 있다. 무력으로 불법(佛法)을 지키는 신장(神將)상으로 추정된다. 통일신라 후기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신장상은 입체적인 데다 사실적인 옷 주름이 더해 마치 신장이 돌에서 걸어 나올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성림문화재연구원 관계자는 “석탑 기단석일 가능성이 있으나 관련 부재들이 아직 확인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승려 신분증으로 추정되는 유물도 있다. 연못 터에서 발견된 목간(木簡·나무막대로 제작한 고대 문서)에는 ‘上早寺迎詔沙미卄一年’(상조사영조사미이십일년)이라는 한자가 적혀 있다. 글자 상태가 좋지 않아 이 중 조(早)와 조(詔)는 각각 군(軍)과 담(談)으로 해석하는 견해도 있다. 의견이 분분하지만 발굴단은 상조사의 영조라는 스님이 황복사에서 열린 법회에 참석했을 때 신분을 증명한 표식으로 보고 있다.
전시를 기획한 유재상 국립경주박물관 학예연구사는 “경주는 발굴조사가 많지만 대중은 발굴의 의미를 알기가 쉽지 않다. 발굴 후 전시까지 걸리는 기간을 단축한 이번 전시가 일반인의 궁금증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되기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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