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격? 외설? 도발?… 제 삶은 계속 새로운 걸 찾는 발명가 같죠”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8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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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년 무르익은 춤’ 대표작 4편 잇단 공연 현대무용가 안은미 인터뷰
28일부터 ‘안은미 컬렉션’ 무대 올려
“팬데믹으로 공연계 힘든 때일수록 더 힘내보기로… 네작품 연달아 빡!”
1988년 첫 작품… 1년에 4∼5편 작업
“작업과정 자체가 즐거운 배움-실험… ‘발명’이 지겨우면 일 그만둬야죠”

안은미는 “더는 노화가 부담스럽지 않다. 나이를 먹으면 먹는 대로 느껴지는 새로움과 경험치가 있다”고 했다. 그는 공연 후 약 두 달간 프랑스, 스페인 등으로 유럽투어를 떠난다. 안은미컴퍼니 제공
안은미는 “더는 노화가 부담스럽지 않다. 나이를 먹으면 먹는 대로 느껴지는 새로움과 경험치가 있다”고 했다. 그는 공연 후 약 두 달간 프랑스, 스페인 등으로 유럽투어를 떠난다. 안은미컴퍼니 제공
‘파격’ ‘외설’ ‘도발’ ‘실험’.

안은미(58)의 이름 앞에는 30년 넘게 여러 수식어가 붙어 왔다. 하지만 이 말들도 그를 설명하기엔 부족해 보인다. 그의 춤 앞에선 ‘파격’이란 단어마저 덜 파격적으로 보이기 때문. 그 대신 그의 공연을 한 번이라도 본 관객이라면 모두 동의하는 명제가 있다. 안은미가 없었다면, 한국 현대무용계는 지금보다는 더 심심했을 거라고.

때론 유쾌하게, 때론 기괴하게 몸짓하며 세상과 소통하는 현대무용가 안은미가 대표작 4편을 연달아 선보인다. 33년간 무르익은 안은미의 춤 세계를 느낄 수 있는 일종의 ‘안은미 컬렉션’이다. 현대무용단 안은미컴퍼니의 창단 33주년을 기념한 이번 공연 ‘4괘―용 이름 거시기 조상님’은 8월 28∼29일, 9월 4∼5일에 걸쳐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아트홀에서 관객과 만난다. ‘드래곤즈’ ‘렛 미 체인지 유어 네임(Let Me Change Your Name)!’ ‘거시기모놀로그’ ‘조상님께 바치는 댄스’ 등 4개 작품을 차례로 하루씩 공연한다.

최근 서울 용산구 보광동의 작업실에서 만난 안은미는 오토바이를 타고 장소에 나타났다. 그는 “어머니는 지금도 제가 오토바이 타는 걸 걱정하신다. 시간을 쪼개 여기저기 다니려면 오토바이밖에 없다. 연습하는 무용단 애들 호떡 간식 사다 주고 왔는데 잘 먹는 걸 보니 행복하다”며 웃었다.

늘 당당하고 여유가 묻어나는 안은미지만 작품 네 편을 연달아 짧은 기간에 선보이는 건 그에게도 처음이다. “힘들어 죽겠다. 그래도 춤을 막진 못한다. 팬데믹으로 공연계가 힘든데 이럴 때일수록 더 힘내보기로 했다. 특히 연습 땐 내가 5만큼 가졌어도 10까지 끌어내야 한다. 무대는 3을 보여주는 것이다. 네 작품을 연달아서 빡!”

아시아 무용수들과 용을 표현한 작품 ‘드래곤즈’(위 사진). 역동적 안무와 발랄한 색감의 의상이 눈길을 끄는 ‘렛 미 체인지 유어 네임’. ⓒSukmu Yun·ⓒ박은지
아시아 무용수들과 용을 표현한 작품 ‘드래곤즈’(위 사진). 역동적 안무와 발랄한 색감의 의상이 눈길을 끄는 ‘렛 미 체인지 유어 네임’. ⓒSukmu Yun·ⓒ박은지
이번 공연 중 28일에 선보일 첫 작품 ‘드래곤즈’는 팬데믹 덕분에(?) 더욱 역동적으로 탄생했다. 본래 아시아 5개 지역 무용수 5인과 ‘용’을 주제로 함께 무대를 만들 예정이었으나, 팬데믹으로 왕래가 막혔다. 그래서 3차원(3D) 작업, 홀로그램 기술을 통한 디지털 실험작이 탄생했다. 실제 무용수들과 3D 기술로 만든 다른 무용수들의 그래픽이 한 무대에서 겹쳐진다. 그는 “작업 과정 자체가 즐거운 배움이자 큰 실험”이라고 했다.

2005년 베를린에서 열린 태평양주간(Pacific week) 페스티벌에서 초연한 ‘렛 미 체인지 유어 네임!’은 지금까지도 가장 많이 공연한 인기작이다. ‘거시기모놀로그’는 이제껏 제대로 말하지 못한 여성들의 ‘성’을 풀어낸 작품이다. 2019년 초연했으며 60∼90대 여성 10명의 첫 경험을 안은미식 몸짓으로 풀어낸다.

‘조상님께 바치는 댄스’는 전국을 돌며 만난 할머니들의 춤을 직접 기록해 작품에 녹여냈다. 무용수가 아닌 할머니, 할아버지가 실제 무대에 올라 함께 춤을 추는 ‘커뮤니티 예술’ 장르다. 이 작품을 기점으로 안은미의 예술 세계에도 변화가 생겼다.

“이전까지 제게 무용이란 무용수, 극장, 나로 이뤄진 거였죠. 그런데 일반인들의 존재적 몸짓은 누구도 주목하거나 기록하지 않더라고요. 어느 순간부터 어머니들의 ‘막춤’도 기록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어요. 춤을 추는 이라면 누구든 각자의 모노드라마를 밖으로 꺼내거든요.”

1986년 이화여대 무용과를 졸업한 안은미는 무용계의 ‘살아있는 전설’로 통한다. 1988년 2월 ‘종이계단’을 발표하며 첫발을 내디뎠고, 지금까지 155편을 내놨다. 1년에 4, 5편을 작업한 꼴이다. “제 삶은 계속 새로운 걸 찾는 발명가 같다. 발명가가 발명이 지겨우면 일을 그만둬야죠.”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현대무용가 안은미#안은미 컬렉션#대표작 4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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