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국적도 이념도 정체성도 있다… 과학‘자‘에게는

김상운 기자 입력 2021-08-07 03:00수정 2021-08-07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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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답이라는 해답/김태호 지음/380쪽·2만 원·창비
1930년대 후반 일본 교토의 고급 요릿집에서 찍은 빛바랜 흑백사진. 세 명의 남자가 자못 심각한 표정으로 나란히 앉아 있다. 이들은 일제강점기 일본에서 활약한 최고의 조선인 과학자라는 공통분모를 가졌다. 하지만 광복 후 이들의 행로는 남과 북으로 엇갈리게 된다. 육종학자 우장춘, 화학자 이태규, 리승기의 이야기다.

과학사를 전공한 저자는 이 책에서 인물을 중심으로 한국 과학사의 이면을 흥미롭게 그리고 있다. 측우기, 자격루 같은 한국과학의 치적을 나열하는 기존 과학사 책들과 차별화되는 지점이다. 책은 과학자도 사회 구성원으로서 시대의 부침에 휘둘릴 수밖에 없음을 생생히 보여준다. 예컨대 위에 언급된 세 과학자는 식민지 지식인으로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조선인 2세로 뒤늦게 도쿄제국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우장춘은 광복 후 한국에 와서도 쉽게 적응하지 못했다. 생애 대부분을 일본에서 보내 한국문화에 서툴렀던 데다 무엇보다 을미사변에 가담한 우범선의 아들이라는 족쇄가 그를 평생 따라다녔기 때문이다. 이태규와 리승기는 광복 직후 미군정의 국립대학안(국대안)에 따라 탄생한 서울대로 적을 옮기지만 안정적인 연구 활동을 이어가지 못했다. 학계마저 좌우간 격렬한 대립이 벌어진 가운데 리승기를 비롯한 상당수 서울대 교수들이 월북을 선택한 것. 1931년 교토제국대를 나와 1939년 일본에서 최초의 합성섬유 ‘비닐론’을 개발한 리승기는 북한 과학계의 주축으로 활동한다.

서울대 문리대 초대학장이 된 이태규는 일제강점기 교토제국대 교수였다는 이유로 “집에서 일본 옷을 입고 일본말을 쓴다”는 근거 없는 비난에 시달려야 했다. 마음에 상처를 입은 그는 결국 미국 유타대로 옮겨 한국 유학생들을 후학으로 길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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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관련해 초창기 한국 과학기술사에서 소수 일본인 연구자들의 기여를 올바르게 평가해야 한다는 저자의 시각이 눈길을 끈다. 예를 들어 화학자 호리바 신키치는 동료 교수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제자였던 이태규가 교토제국대 교수로 임용될 수 있도록 애썼다. 비록 이들도 일본제국주의의 한 요소로 기능했지만, 한국 과학사에 끼친 영향을 간과할 수 없다는 게 저자의 견해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기자페이지 바로가기>
#오답#과학자#해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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