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캐는 검사, 부캐는 웹소설 작가

이호재기자 입력 2021-08-05 14:56수정 2021-08-05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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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청에선 자신의 범죄로 끔찍한 결과가 벌어질지 알고도 범행을 저지르는 ‘미필적 고의’형 범죄자들을 많이 만나요. 영화나 드라마에서 늘 멋진 남자주인공으로 나오는 왕세자가 미필적 고의로 살인을 하면 어떨까 상상하다 글을 쓰게 됐죠.”

1일부터 카카오페이지에 웹소설 ‘왕세자의 살인법’을 연재하는 서아람 수원지검 공판부 검사(35·변호사시험 2회)는 지난달 29일 전화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매일 범죄자를 마주하는 검사로서의 겪던 고민이 웹소설 집필까지 이어지게 됐다는 것. 그는 “많은 범죄자들이 ‘에이, 설마’ 하면서 자신의 내면에 숨겨진 악의를 발현시켜 범죄를 저지른다”며 “처음부터 악독한 살인범이 아니지만 점점 음험한 사이코패스의 본모습을 드러내는 왕세자의 이야기를 통해 범죄자들에게 경고를 보내고 싶었다”고 했다.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을 졸업하고 2013년 임관한 뒤 서울남부지검, 광주지검에서 일한 그는 카카오페이지에서 ‘초연’이라는 필명의 웹소설 작가로 활동 중이다. 2019년 승승장구하던 검사가 어느 날 의문의 테러로 앞을 보지 못하게 된 뒤 과거 사건을 파헤치는 ‘암흑검사’, 지난해에는 강력부 검사가 어린이집에 위장 취업해 사건을 수사하는 ‘검사님의 보육일지’를 연재했다. 두 작품 모두 각각 200만 회 넘게 조회됐고 영상화가 추진되고 있다. ‘본캐’(본캐릭터)인 검사와 ‘부캐’(부캐릭터)인 웹소설 작가 활동을 성공적으로 병행하고 있는 것. “그동안 교통, 보이스피싱, 성범죄, 가정폭력 등 다양한 사건을 수사했지만 검사 윤리강령을 위반하지 않기 위해 제가 수사한 사건을 작품에 쓰지 않는 것이 원칙이에요. 개별적인 사건에서 영감을 받기보단 범죄자를 만나며 든 생각이 자연스럽게 작품에 녹아드는 것 같습니다.”

‘왕세자의 살인법’은 조선시대 왕세자의 거처인 경복궁 동궁전에서 벌어지는 연쇄 살인사건을 다뤘다. 궁녀 윤서린은 손으로 물건을 만지면 그 안에 깃든 기억을 볼 수 있는 초능력인 ‘사이코메트리’로 왕세자 이범의 실체를 파헤친다. 서 검사는 “내가 초임검사였던 9년 전만 해도 사건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피의자나 피해자를 앉혀놓고 물어보고 또 물어봐야 했다”며 “하지만 요즘은 폐쇄회로(CC)TV와 차량 블랙박스로 상황을 다 볼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이어 “CCTV도 블랙박스도 없는 조선시대에 살인사건이 벌어진다면 어떻게 범인을 찾을까 고민했다”며 “주인공에게 사이코메트리라는 무기가 있다면 현대의 추리소설처럼 흥미진진하게 읽히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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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검사로서 지닌 법의학 지식도 글에 활용했다. 궁중 의녀 단금이 피해자가 사망한 원인을 찾기 위해 부검을 하는 장면에서다. 그는 “검사는 변사사건 기록을 검토하다 필요한 경우가 생기면 직접 검시를 하는 등 기본적인 법의학 지식을 갖춰야 한다. 법의학 지식을 바탕으로 피해자의 유골 상태를 확인한 단금이 피해자가 언제 어떻게 죽었는지, 용의자의 키가 큰지 작은지 밝혀내는 장면을 그렸다”고 말했다.

검사이자 작가인 그는 두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이기도 하다. 육아와 직장업무, 글쓰기를 병행하는 게 힘들진 않을까 물었더니 유쾌한 톤으로 답이 돌아왔다. “아이를 돌보는 중간에 작품 아이디어를 메모하고 주말에 틈틈이 글을 써요. 유명 출판사를 통해 등단하지 않아도, 전업 작가가 아니어도, 소설을 쓸 수 있다는 게 웹소설의 매력이죠. 늘 독자에 머물러 있을 줄 알았던 저도 작가가 됐으니 다른 분들도 웹소설 한번 써보세요!”

이호재기자 hoho@donga.com기자페이지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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