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속에 녹아든 이민자의 삶

김기윤 기자 입력 2021-05-24 03:00수정 2021-05-24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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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현대무용제 초청작 ‘360°’
부부 안무가 최문석-코드르 창작
떠도는 이민자의 정체성 담아
“춤 통해 공존의 가치 말하고파”
무용수 4명이 이민자로서 정체성의 혼란을 춤으로 표현한 ‘360°’의 한 장면. 최문석 안무가는 “무용수들이 털어놓은 개인적 사연 등을 작품에 녹였다”고 말했다. 국제현대무용제(MODAFE)·최문석 안무가 제공
텅 빈 무대에 선 다양한 국적의 무용수 네 명이 온몸으로 호흡한다. 들이마신 산소가 폐와 심장을 거쳐 온몸의 세포로 전해지듯 몸을 꿀렁거린다. 어딘가 삐걱대며 불편해 보이는 몸짓은 무언가 꺼내고 싶은 말이 있다는 호소로 들린다.

무용단 ‘12H Dance’가 29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에서 선보이는 ‘360°’는 집 떠난 이들의 정체성에 대해 말하는 작품이다. 작품명 360°는 바퀴가 굴러가듯 회전하는 원 혹은 지구를 뜻한다. 작품은 하나의 지구 안에서 끊임없이 움직이는 이민자들, 한발 더 나아가 알 수 없는 경계에 선 우리 모두를 다룬다.

작품을 만든 이는 12H Dance의 공동 안무가 최문석(40)과 샤밀라 코드르(37). 이들은 부부 무용수로 독일 베를린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올해 국제현대무용제(MODAFE) 측의 초청을 받아 국내 첫 무대를 앞두고 있다.

20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최 안무가는 “팬데믹으로 외국인 혐오가 늘었다. 이주자, 이민자와 관련된 사회 갈등도 늘고 있다”며 “인간은 모두 떠도는 존재라는 걸 생각하면 결국 서로 공존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춤을 통해 공존의 가치를 말하고 싶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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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안무가에게 이민자 혹은 경계인으로서의 고민은 어쩌면 당연했다. 각자 모국인 한국과 아르헨티나를 떠나 독일에서 활동했다. 둘은 독일 자를란트 주립 무용단에서 동료로 만나 결혼했다. 2012년부터 프리랜서로 활동하다 2018년 12H Dance 무용단을 세웠다. 무용단 이름은 한국과 아르헨티나의 시차(12시간)에서 착안했다.

최 안무가는 “전혀 다른 문화권에 살다 유럽으로 이주한 뒤 새 문화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편으론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하고 ‘붕 떠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2016년부터 아내와 이런 고민을 나누다 불안한 감정을 춤으로 창작했다”고 밝혔다.

2019년 독일 무대에서 이 작품을 처음 선보인 순간을 그는 잊지 못한다. 공연 후 몇몇 관객이 그를 찾아왔다. 출신 국가는 서로 달라도 느낀 바는 비슷했다. 이들은 “마음 깊은 곳에 혼자만 품고 있던 무언가를 건드렸다” “당신이 다 얘기하지 않아도 춤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것 같다”고 했다.

최 안무가는 “앞으로도 시리즈 작품을 통해 경계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독일 연방정부로부터 예술인 장학기금과 연구개발 지원 프로그램 대상자로 선정된 12H Dance는 향후 기후변화를 주제로 다룰 예정이다.

이번 작품의 무대 구성은 단조롭지만 무용수들은 화려한 원색 의상을 입는다. 최 안무가는 “실제 이민자로 살아온 무용수들 각자의 개성과 정체성을 밝고 화사한 색으로 드러냈다. 무거운 주제의 작품에 다른 공기를 불어넣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무대 음악의 제목도 의미심장하다. ‘No soy de aqui ni soy de alla(스페인어로 ‘나는 이곳에서도 저곳에서도 온 것이 아니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기자페이지 바로가기>
#무용단#12h dance#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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