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과 하나라도 관련되면 드라마 보이콧” 시청자 뿔났다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4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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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구마사’ 중국풍 장면이 촉발… 제작중인 드라마에도 촉각 세워
中원작이거나 제작 후원 받으면 SNS에 비난 댓글 쏟아져 곤욕
제작사 “소품도 일일이 자문 받아” 일각선 “과도한 잣대에 창작 위축”

지난달 14일 방송된 tvN 드라마 ‘빈센조’ 8회에서 논란이 된 중국산 비빔밥 장면. 비빔밥을 중국 음식으로 오인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돼 티빙, 넷플릭스 게재 영상에서 이 장면은 삭제됐다. tvN 화면 캡처
지난달 14일 방송된 tvN 드라마 ‘빈센조’ 8회에서 논란이 된 중국산 비빔밥 장면. 비빔밥을 중국 음식으로 오인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돼 티빙, 넷플릭스 게재 영상에서 이 장면은 삭제됐다. tvN 화면 캡처
SBS 드라마 ‘조선구마사’ 폐지 이후 중국 자본이 투입됐거나 중국 원작과 관련 있는 드라마들이 뭇매를 맞고 있다. 조선구마사는 중국풍 소품 사용 논란 등으로 2회 만에 전격 폐지됐다. 중국의 고압적인 행태로 쌓여온 반중(反中) 정서가 이 드라마를 계기로 표출됐다는 분석이 나오는 가운데 창작물에 대한 과잉 대응이라는 반론도 있다.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중국 연관 드라마 리스트가 돌아다녔고 해당 게시물에 “중국 관련 드라마를 보이콧하자”는 내용의 댓글이 달렸다. 이 리스트에 오른 tvN ‘간 떨어지는 동거’는 네이버웹툰 원작으로, 드라마 제작에 중국의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업체 아이치이(iQIYI)가 참여한다.

중국 웹툰, 웹소설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를 기획 중인 제작사들은 잔뜩 긴장하고 있다. tvN ‘철인왕후’는 중국 웹드라마 ‘태자비승직기’가 원작이라는 이유로 지난해 방영 당시 시청자들의 항의를 받았다. 하반기 tvN 기대작인 ‘잠중록’도 동명의 중국 베스트셀러 웹소설을 바탕으로 제작돼 도마에 올랐다. JTBC 드라마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는 중국 추리소설 ‘추리의 왕’ 시리즈 중 하나를 각색한 작품이라고 해서 비판을 받고 있다. 중국 원작이 아닌 사극도 중국풍 소품이 사용될 수 있다는 이유로 요주의 리스트에 올랐다. 홍정은, 홍미란 작가(홍자매)가 천기(天氣)를 다루는 젊은 술사(術士)들의 이야기를 다룬 판타지 사극 ‘환혼’이 대표적이다.

방송가는 여론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실제로 tvN 드라마 ‘빈센조’는 8회에서 논란이 된 중국 브랜드 비빔밥의 간접광고(PPL) 장면을 국내외 OTT에서 삭제했다. 한중 군주가 연적이 되는 드라마 ‘해시의 신루’의 제작사 스튜디오앤뉴는 “역사 왜곡이 우려되는 부분에 대해 원작자인 윤이수 작가와 논의해 각색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과거 퓨전 사극을 만든 드라마 제작사 관계자는 “시청자의 기대치가 높아진 만큼 전반적인 내용뿐만 아니라 회차별 소품까지 일일이 자문을 해야 한다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반중 정서는 드라마를 넘어 문화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지난달 29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강원도 차이나타운 건설을 철회해주세요’라는 글이 올라왔다. 게시자는 “중국 동북공정에 우리 문화를 잃게 될까봐 불안감을 느끼는 상황에서 도내 차이나타운 건설을 강력히 반대한다”고 썼다. 강원도 차이나타운은 내년 한중 수교 30주년을 기념해 추진 중인 중국문화 체험공간으로, 규모가 인천 차이나타운의 10배에 달한다. 이 청원에는 6일 현재 42만 명 이상이 동의를 표시했다.

일각에서는 무조건적인 반중은 자제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SNS에서는 “한중 교류에서 우리 고유의 문화를 지키는 노력은 해야 하지만 타국과의 교류 자체를 막는 건 위험하다”는 의견도 있다. 김성수 문화평론가는 “특정 국가와의 문화 교류를 막으면 불필요한 논쟁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며 “다만 국내 드라마 제작자도 중국이 중화주의를 과도하게 강조하는 상황에서 이를 경계하는 한국인의 시각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중 정서에 따른 과도한 여론몰이가 창작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원천적으로 중국 관련 콘텐츠를 막겠다는 건 위험한 발상이다. 콘텐츠를 보기도 전에 여러 제한을 두는 건 작가가 이야기를 펼쳐 나가는 데 있어 일종의 폭력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당시 생활상에 대한 고증은 필요하지만 판타지 장르에까지 지나치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건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조선구마사#빈센조#보이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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