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내 전성기는 오지 않았다”[횡설수설/김창덕]

  • 동아일보

올 3월 세계배드민턴연맹(BWF)이 주관한 ‘2025 전영오픈’ 결승전 2세트. 6-6으로 맞선 두 선수의 랠리가 1분을 훌쩍 넘기고 있었다. 상대의 마지막 79번째 샷이 네트에 걸리는 순간 안세영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배드민턴 여자단식 역사상 최장 랠리로 기록된 순간이었다. 안세영은 이 득점을 시작으로 상대를 거세게 몰아붙였고, 체력적 우위를 내세워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안세영의 하루는 오전 5시 반 400m 트랙 열 바퀴를 뛰는 것으로 시작한다. 오전 배드민턴 훈련과 오후 근력 훈련, 그리고 야간 기술 훈련으로 이어진다. 이 일과가 매일 반복된다. 경기 후반부 당장 쓰러질 것 같은 표정을 짓고도 어김없이 코트에 몸을 던져 셔틀콕을 받아 넘기는 건 그 덕에 가능했다. 이른바 ‘질식수비’라 불리는 안세영의 플레이스타일은 상대에겐 공포의 대상이다.

▷안세영은 등장부터가 강렬했다. 만 15세가 되던 2017년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8전 전승을 거뒀다. 중학생이 선발전을 통과한 것도 놀랍지만 이렇게 압도적 성적을 거둔 사례는 없었다. 물론 국제 무대는 만만치 않았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선 첫 경기 만에, ‘2020 도쿄올림픽’은 8강에서 모두 같은 선수에게 져 탈락했다. 도쿄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중국 천위페이였다. 안세영은 2022년 7전 8기 만에 복수에 성공했다. 숙적을 넘어선 그는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과 ‘2024 파리올림픽’을 연달아 제패했다.

▷국내 팬들에게 안세영의 이미지는 단지 운동만 잘하는 선수가 아닌, 할 말은 하는 ‘당돌한’ MZ다. 그는 아시안게임 2관왕으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지만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그저 평범한 운동선수”라며 광고 모델·방송 출연을 모두 고사해 화제가 됐다. 작년 올림픽 경기가 끝난 뒤엔 대한배드민턴협회와의 갈등을 폭로하면서 스스로 이슈의 중심에 섰다. 올 7월 일본 요넥스와 4년 100억 원 수준의 후원계약을 맺은 뒤 “결국 모든 게 돈 때문”이라는 날 선 비판이 쏟아졌는데도 안세영은 흔들리지 않았다.

▷안세영은 워낙 뛰어난 수비력을 갖춘 데다 최근 크로스 헤어핀과 대각 스매싱 같은 공격 기술도 향상돼 완성형 선수에 가까워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역대급’ 시즌을 완성해 낸 원동력이다. 올해 거둔 11번의 우승, 연간 누적 상금 100만3175달러, 시즌 승률 94.8% 모두 남녀를 통틀어 BWF 신기록이거나 타이 기록이다. BWF 공식 SNS 계정은 안세영의 시즌 마지막 우승 후 “The YOUNG GOAT(역사상 최고 선수)!”라고 썼다. 스물셋 배드민턴 여제는 그럼에도 “아직 내 전성기는 오지 않았다”고 한다. 언제나 목마른 비인기 종목 ‘슈퍼스타’의 갈증을 안세영이 채워주고 있다.

#안세영#배드민턴#2025 전영오픈#질식수비#국가대표#아시안게임
© dongA.com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