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하니 들어도 뿅 간다… ‘멍뮤직’의 낯선 즉흥음악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2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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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연주자-자연요법사 이선재씨, 작년 프리재즈 음반제작사 만들어
즉흥연주 카세트로 원테이크 녹음
“한국 즉흥음악 키워 세계 알릴것”

이선재 멍뮤직(Mung Music) 대표. 이달 초 낸 신작 ‘Claustrophobia(밀실 공포증)’에서 박자와 조성을 넘어 분출하는 색소폰, 간헐천처럼 터지는 드럼의 교차로 또 하나의 문제작을 보여줬다. 멍뮤직 제공
이선재 멍뮤직(Mung Music) 대표. 이달 초 낸 신작 ‘Claustrophobia(밀실 공포증)’에서 박자와 조성을 넘어 분출하는 색소폰, 간헐천처럼 터지는 드럼의 교차로 또 하나의 문제작을 보여줬다. 멍뮤직 제공
간판부터 홀리는 가게가 있다.

‘멍뮤직.’ 눈이 가는 집이다. 들어서면 나타난다. 멍하게 들어도, 각 잡고 들어도 뿅 가는 음악…. 지난해 가을 문을 연 음반사다. 앨범을 12장 냈는데 하나같이 아방가르드 재즈, 프리 재즈 장르다. 마니아 시장이 발달한 독일이나 미국에 본사가 있을 듯한 고집불통 음반사다.

23일 멍뮤직 대표인 이선재 씨(39)를 만난 곳은 뜻밖에 자연요법 클리닉이었다. 그가 직접 운영하는 곳이었다. 멍뮤직의 선(仙)적인 음반 표지는 모두 그가 직접 그렸다고 했다. 화가 겸 색소포니스트 겸 음반 제작자 겸 자연요법사. 어쩐지 ‘멍’(또는 명상)을 제대로 알 듯한 인물이다.

“미국 보스턴에서 태어나 자라고 공부했습니다. 32세 때인 2014년에야 한국에 들어와 정착했죠. 미국에서 자연요법을 공부하고 미술 전시회를 열며 색소폰을 불었습니다.”

멍뮤직에서 작년에 낸 해금-전자음-타악 트리오 ‘Saaam Kiiim(삼킴)’의 ‘Ma-chal’ 카세트테이프 앨범. 멍뮤직 제공
멍뮤직에서 작년에 낸 해금-전자음-타악 트리오 ‘Saaam Kiiim(삼킴)’의 ‘Ma-chal’ 카세트테이프 앨범. 멍뮤직 제공
멍뮤직의 철학도 표지만큼 선(仙)적이다. DIY, 자유즉흥, 로파이(lo-fi·의도적 저음질). 빈 라이브 클럽에 연주자를 모으고 그들의 긴 즉흥연주를 구식 4트랙 카세트테이프 녹음기로 채록한다. 녹음, 믹스, 마스터를 이 씨 혼자 해낸다.

“실시간, 원테이크(한 방에 녹음)가 원칙이죠. 사후 편집이나 수정은 없습니다.”

이 씨 자신도 프리재즈 연주자다. 2016년 자라섬국제재즈콩쿠르에서 대상과 베스트 크리에이티비티(최우수 창의)상을 받았다. 올해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연주’ 후보에 올랐다(이달 28일 시상식). 김은영(피아노) 석다연(드럼)과 함께한 트리오 음반 ‘Pulse Theory’인데 50분 44초짜리 즉흥연주곡 하나로만 구성된 실험 앨범이다.

“미국 살 때 우연히 ‘Korean Free Music’이란 동영상을 클릭했다 충격에 휩싸였죠. 한국 프리재즈의 대가인 강태환, 최선배, 고 김대환의 연주였어요.”

한국에 와보니 젊고 실력 있는 즉흥연주자들이 많아 깜짝 놀랐다고. 그러나 그들의 현실이 팍팍했다. 생계 탓에 분위기 좋은 재즈, 대중적 세션 연주를 하며 음악적 날개를 접고 있는 이들이 많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무대마저 사라지자 이 씨가 ‘멍뮤직’이란 판을 깔았다.

지박(첼로), 표진호(보컬), 서수진(드럼), 최성호(기타), 김보림(판소리)…. 악기도 장르도 다양한 이들이 자유즉흥의 기치와 멍뮤직의 이름 아래 녹음에 임했다. 한국 1세대 재즈 연주자 최선배 씨도 프리재즈 장르 복귀작을 지난해 멍뮤직에서 냈다.

“한국의 젊은 프리재즈 연주를 외국 친구들에게 들려주면 ‘이렇게 멋있는 음악이 한국에?’ 하고 깜짝 놀라죠.”

멍뮤직의 작명은 역시나 ‘멍하다’의 그 ‘멍’에서 왔다. 이 씨는 자연치료를 전공하며 명상에 관심이 많았다.

“연주에 몰입하면 명상이 시작돼요. 자유즉흥 음악을 들으실 땐 화성 대신 질감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폭풍우나 파도 소리를 들을 때처럼요. 선입견과 기대는 모두 버리고 잠재의식을 열어야 하죠.”

김도연(가야금), 심운정(장구) 등 새로운 연주자들의 음반도 곧 멍뮤직에서 나올 예정.

“강태환 선생의 명맥을 이어 한국의 즉흥음악이 융성하도록 돕는 것, 그것을 세계에 알리는 것. 제가 평생 할 일입니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멍뮤직#즉흥음악#프리재즈#즉흥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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