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었다”는 말에 담긴 회한은 아직 기회가 있단 뜻일지도…

임준철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입력 2020-12-31 03:00수정 2020-12-31 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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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를 영화로 읊다] <7> 마지막 날 해야 할 일
영화 ‘영원과 하루’에서 주인공 알렉산더는 아내와의 추억이 서린 해변에서 자신의 삶에 대한 회한을 담아 ‘꽃의 마음’ ‘이방인’ ‘너무 늦은 밤’이란 세 개의 시어를 절박하게 외친다. 시네마서비스 제공
삶을 성찰하는 특별한 예술작품을 감상하기 위해서는 길고 지루하더라도 인내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테오도로스 앙겔로풀로스 감독의 영화 ‘영원과 하루’(1998년)나 중국 남조(南朝) 송(宋) 포조(鮑照·414?∼466)의 ‘송백편(松柏篇)’이 그런 작품이다.

혼란한 세상 속 불우했던 포조는 오랜 병고 끝에 마지막을 예감하고 친구가 빌려 간 책을 되찾아 온다. 서진(西晉) 부현(傅玄·217∼278)의 문집이었다. 포조는 그중 ‘구학편(龜鶴篇)’에 특히 공감해 이 시를 이어 96구에 이르는 송백편을 지었다.


시인에게 장수를 상징하는 거북이와 학을 제목으로 삼은 시(구학편)가 와 닿은 이유는 세상을 하직하는 내용이 자신의 상황과 유사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포조는 또 다른 장수의 상징인 소나무와 측백나무를 시제(詩題)로 삼아 자신의 마지막을 노래했다. 장자(莊子) ‘덕충부(德充符)’의 “땅에서 생명을 받은 것 중에서는 오직 소나무와 측백나무만이 올바르니, 홀로 사철 푸르디푸르다(受命於地, 唯松柏獨也, 在冬夏靑靑)”라는 구절을 떠올렸던 것이다. 과거 중국에서 무덤가에 이 나무들을 심었던 것도 착상의 배경이 된 듯하다. 작품 속 사철 푸르른 송백은 이울어 가는 인생을 더 구슬프게 만든다.

영화 ‘영원과 하루’ 속 그리스 시인 알렉산더 역시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자각하며 19세기 시인 솔로모스의 미완성 시를 완결하려 했다. 공교롭게도 포조와 알렉산더 모두 끼우려는 삶의 마지막 단추가 시의 언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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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갈구하는 언어의 결핍은 시인과 주인공이 살아간 시대의 질곡과도 관련이 깊다. 걸핏하면 왕과 왕조가 바뀌던 남조의 혼란상과 그리스가 겪은 질곡의 근현대사가 이들에게 마지막 시를 쓰게 만든 것인지 모른다. 시는 그들이 존재하는 방식이며 이유였다.

포조는 “시간은 점점 멀어져만 가고, 품은 뜻은 날마다 가라앉아 가네. 인생은 참으로 어려운 것이니, 하늘의 도는 어떤 사람에게 허락되는 것인가(年代稍推遠, 懷抱日幽淪. 人生良自劇, 天道與何人)?”(‘대호리행·代蒿里行’)라고 읊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알렉산더는 절박하게 ‘꽃의 마음’ ‘이방인’ ‘너무 늦은 밤’이란 세 개의 시어를 외친다. 그중 ‘너무 늦은 밤’이란 말은 죽음 앞에서 느끼는 회한과 성찰을 암시한다. 알렉산더가 일에만 매달려 아내를 외롭게 만든 과거를 후회한 것처럼 포조도 삶을 함께 즐기지 못한 것을 한스럽게 여겼다.

오늘은 한 해의 마지막 날이다. 늦었다는 말은 기회가 남아 있음을 계시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 모두 삶에 대한 성찰과 각성이 너무 늦지 않기를 바란다. 영화에선 내일을 “영원과 하루”라고 말한다. 남은 시간도 그 영원 속의 하루하루일 것이다. 영원히 반복돼 온 끝이자 또 다른 시작으로서.

임준철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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