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이해해줄 이 기다리며 현실의 벽 앞에서 꿈꾸듯 살다

임준철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입력 2020-12-17 03:00수정 2020-12-17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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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를 영화로 읊다] <6> 회한의 삶도 의미있는 이유
영화 ‘레올로’에서 주인공 레올로는 암울한 가정환경에도 혼자 책을 읽고 글을 쓴다. 레올로는 자신이 꿈을 꾸기 때문에 미치지 않았다고 말한다. 키노필름 제공
죽은 뒤 내 묘비엔 어떤 말이 새겨질까. 웨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 ‘로얄 테넌바움’(2001년)에는 가족들로부터 외면받던 아버지가 자신의 묘비명을 스스로 정하는 내용이 나온다. “로얄 타넨바움, 침몰해가는 전함의 잔해에서 가족들을 구하다 비극적으로 전사하다.” 사실이라기보다 바람을 담은 듯한 묘비명대로 그는 죽음을 맞이한다.

이렇게 묘비에 새길 말을 스스로 쓴 한시를 떠올려 본다. 평생 방랑과 은둔을 반복한 김시습(金時習·1435∼1493)의 ‘나 태어나(我生)’다.

알려진 것처럼 김시습은 세조의 왕위 찬탈에 충격을 받고 세상을 등진 채 평생 정신적 저항을 했다. 우리가 생육신 중 한 사람으로 그를 선양하는 이유다. 하지만 당시에는 예법에 구애받지 않는 행동으로 미쳤다고 손가락질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승려가 된 것에 대해서도 논란이 분분했다.

이 때문인지 김시습은 유독 자신을 해명하는 작품을 많이 남겼다. 말년에는 자화상에 직접 자신의 지향을 밝히는 말을 써놓기까지 했다.(‘自寫眞贊’) 오십대 초반 강원 양양 설악산 부근에서 쓴 위 시에서도 인간 된 도리조차 다하지 못했다는 회한 속에 자신의 일생을 ‘꿈’이란 키워드로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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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클로드 로종 감독의 자전적 영화 ‘레올로’(1992년)에서도 삶이 곧 꿈꾸기인 소년을 만날 수 있다. 주인공 레올로는 자신을 죽이려 했던 할아버지, 배설에만 집착하는 아버지, 지능이 떨어지거나 정신이 불안정한 형제들 속에서 자신은 꿈을 꾸기 때문에 미치지 않았다고 되뇐다. 소년의 살아가는 방식이 곧 꿈꾸는 일이었다.


김시습 역시 자신의 삶을 꿈꾸듯 살다 간다고 규정했다. ‘꿈’이라는 말이 언뜻 낭만적으로 들리기도 하지만, 이 표현은 사실 ‘취생몽사(醉生夢死)’에서 온 것이다. 자신의 생각만을 고집하여 꿈꾸듯 한평생을 허송세월했음을 의미한다. 시인은 자신의 삶을 회고하며 “나 태어나 어찌하여 혼자 괴로웠던가, 사람들과 기호가 달라서라네(我生何爲苦幽獨, 不與衆人同所好)”(‘東峯六歌’)라고 읊었던 적이 있다. 세상과의 불화는 남들과 달랐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꿈꾸듯 살다 죽은 노인(夢死老)’이란 묘비명은 더욱 의미심장하다. 표면적으론 자신의 삶에 대한 자조인 듯하지만, 끝내 불의한 현실에 투항하길 거부한 꼿꼿한 자존심이 느껴진다.

완강한 현실의 장벽 앞에서 우리 역시 한시와 영화처럼 꿈꾸는 것밖에 할 수 없을 때가 있다. 그래도 이 꿈이 무의미하지 않은 것은 언젠가 자신을 진정으로 이해해줄 누군가가 있으리란 믿음 때문이다. 김시습은 꿈꾸듯 살다 간 자신을 이해해줄 사람을 기다렸다. 영화 속 레올로에겐 그를 이해해준 이웃 노인이 있었다. 이 시를 읽는 우리도 그런 사람이면 좋겠다.

임준철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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