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지고 팝니다” 오그랑장사의 눈물[손진호의 지금 우리말글]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2월 27일 09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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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동아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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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없었던 것으로 치고 다시 2020년을 시작하자는 사람들이 많다. 올 한 해 얼마나 힘들고 괴로웠으면 이럴까 싶다. 오죽했으면 자영업자들이 ‘몹시 어렵고 힘들다’는 뜻의 간난신고(艱難辛苦)를 올해의 사자성어로 꼽았을까. 가히 ‘오그랑장사’의 애타는 심정을 이해할 만하다.

사실 장사꾼의 ‘밑지고 판다’는 말은 대표적인 거짓말 중 하나다. 한데 오그랑장사가 사전에 올라 있는 걸 보면 생판 거짓말은 아닌 듯싶다. 왜 있잖은가. 가게 문을 닫게 됐다면서 하는 폭탄 세일처럼 오그랑장사는 밑지는 장사를 말한다.

이에 반해 곱으로 이익을 내는 장사는 ‘곱장사’이다. ‘되넘기장사’는 물건을 사서 곧바로 다른 곳으로 넘겨 파는 장사를, ‘듣보기장사’는 시세를 듣보아 가며 요행을 바라고 하는 장사를 말한다. 얼렁장사와 동무장사는 여러 사람이 밑천을 어울러서 하는 장사다. 요즘의 동업(同業)이다.

장사의 세계에도 재미난 우리말이 많다. ‘에누리’가 대표적이다. 에누리는 원래 ‘물건을 팔 때 받을 값보다 더 많이 부르는 것’을 뜻했다. 일종의 ‘바가지’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반대인 ‘값을 깎는 일’로 쓴다. 그러니까 파는 사람이 에누리를 한 물건을 사는 사람도 에누리를 해 샀다면 결국 제값을 주고 샀다는 말이 된다. 이런 말 씀씀이를 반영해 사전은 두 가지 뜻 모두를 에누리에 담았다.

그러고 보니 ‘빚쟁이’도 에누리와 닮았다. 돈을 빌려준 사람이나 빚을 진 사람 모두를 낮잡아 이르는 말이다. 말글살이가 편리해지는 건 좋은데 돈을 빌려준 사람으로선 ‘-쟁이’란 표현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겠다.

사진=동아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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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는 흥정이 반’이라고 했던가. 밀고 당기는 과정에서 상대에게 양보하는 척하면서 자기의 실속을 챙기는 데 흥정의 묘미가 있는 게 아닐까. ‘도거리흥정’은 어떤 물건을 한 사람이 몽땅 사려는 흥정이고, ‘낱흥정’은 낱으로 값을 매기는 흥정이다. ‘절박흥정’은 융통성이라곤 없는 빡빡한 흥정을 말한다. “그 가격엔 안 파니까 그냥 가세요.” 상인의 눈초리가 뒤통수에 내리꽂히는 경험을 한두 번쯤은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상인들이 좋아하는 손님은 누굴까. 그야 덤터기를 씌우기에 딱 좋은 ‘내미손’일 듯싶다. 내미손은 물건을 흥정하러 온, 어수룩하고 만만한 사람을 말한다. 요샛말로 ‘호갱님’이다.

흥정이 끝나면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술 등을 대접하는데, ‘성애’라고 한다. 이때 먹는 술이 성애술이다. 역시 흥정은 붙이고 볼 일이다.

지긋지긋한 코로나19의 해가 저물고 있다. 새해에는 코로나를 이겨내고 모두 곱장사로 대박 났으면 좋겠다.

songba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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