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 하우스’서 ‘드림 팝’까지… 백예린의 음악이 넓어졌다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2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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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2집 앨범 ‘tellusboutyourself’ 발매하는 백예린
“그날그날 쓴 곡을 날짜순 배치 앨범이 일기장 보여주는 느낌
1집이 아름다운 동화 같았다면 이번엔 내 모난 부분 그대로 담아
또 영어가사… 내 가창과 어울려”
작년 1인기획사 세워 JYP서 독립, 올 한국대중음악상 3개부문 수상

3일 오후 만난 싱어송라이터 백예린은 “전 회사(JYP)를 나온 뒤 1년 3개월간 직접 큰 결정도 내리고 비즈니스 미팅에도 참석하며 진짜 사회를 부딪쳤다. 지금은 제가 잡은 핸들 뒤에서 안전하고 만족스러운 드라이브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블루바이닐 제공
3일 오후 만난 싱어송라이터 백예린은 “전 회사(JYP)를 나온 뒤 1년 3개월간 직접 큰 결정도 내리고 비즈니스 미팅에도 참석하며 진짜 사회를 부딪쳤다. 지금은 제가 잡은 핸들 뒤에서 안전하고 만족스러운 드라이브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블루바이닐 제공
백예린이 3일 공개한 신작 티저 영상의 첫 장면. 유튜브 화면 캡처
백예린이 3일 공개한 신작 티저 영상의 첫 장면. 유튜브 화면 캡처
《긴 백금발과 흰 마스크 사이로 드러난 조막만 한 얼굴. 새벽의 초승달처럼 웃는 이 수줍은 소녀가 그 백예린(23)이 맞다고 했다. 케이팝의 콘크리트 룰을 해머로 깨고 역주행 중인 ‘보니와 클라이드’의 당참을 상상했었다. 다이도처럼 포근한 음색으로 휘트니 휴스턴의 절창을 뿜을 수 있는 특별한 여성의 어떤 전형을 미리 속단했었다.

그러나 3일 서울 마포구의 음반사 ‘블루바이닐’에서 처음 대면한 싱어송라이터 백예린의 여린 첫인상은 머릿속 그림을 찢어발겼다. 신작 발매를 앞둔 심정을 내내 “부끄럽다” “무섭다”로 표현했다. 백예린이 10일 2집 ‘tellusboutyourself’를 내고 돌아온다. 1집 ‘Every letter I sent you’ 이후 꼭 1년 만의 정규앨범. 인터뷰를 극히 꺼리던 그가 이번엔 꼭 기자와 만나 새 음악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했다.》

“앨범을 만드는 시기에 제 삶에 격변이 있었어요. 안 좋은 사람도 만나고 많은 일을 겪으면서 제 성격이 조금씩 달라지는 순간들을 지나왔어요.”

그 순간들이 담긴 유리병, 아직은 꽁꽁 숨겨둔 2집의 14곡을 이날 백예린과 함께 들었다. 1980년대 시카고 하우스, 1990∼2000년대의 UK 개러지 사운드, 2010년대 인디 팝과 드림 팝까지…. 다채로운 사운드 스펙트럼, 새로운 실험이 백예린의 세계를 또 한번 깨뜨리고 확장하고 있었다.

“전작이 동화 같고 아름다웠다면 신작은 저의 모난 부분을 그대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좀 걱정도 돼요.”

타이틀곡 ‘Hate you’에는 ‘F워드’도 등장한다. 신작은 백예린의 한 해를 기록한 일종의 콘셉트 앨범이다.

“그날그날 쓴 곡을 날짜순으로, 캘린더처럼 앨범에 배치했어요. 수록곡의 가제는 모두 ‘0123’ ‘0216’ 같은 날짜였거든요. 일기장을 공개하는 느낌이어서 실은 좀 무서워요.”

자본과 작전이 난무하는 케이팝 판에서 백예린은 의미심장한 성공 스토리를 써왔다. 10대 초반에 JYP엔터테인먼트에 들어가 데뷔했지만 지난해(22세) 혈혈단신 1인 기획사를 세워 독립했다. 모든 곡을 스스로 작사·작곡하고 일부 작곡과 편곡은 인디 록 밴드 출신 프로듀서 구름(본명 고형석·29)과 함께한다.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시작했어요. 신작에선 직접 사운드를 고르고 편곡에 참여하는 비중이 늘었죠.”

백예린은 올 2월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최고 영예인 ‘올해의 음반’을 비롯해 세 개의 트로피를 쥐었다. 지난해엔 한국인이 부른 영어 노래(‘Square(2017)’)로 주요 차트 정상을 석권하는 가요 역사상 초유의 일을 해냈다.

신작 제목인 ‘tellusboutyourself’는 백예린이 떠올린 가상의 인스타그램 계정명이라고.

“자신 안의 수많은 자아에게 ‘네 자신에 대해 말해줘’라 부탁하는 셈이에요. 좀 복잡하죠?”

수많은 자아를 사운드로 분절해낸 듯, 신작의 완성도는 놀랍다. ‘0415’ ‘“HOMESWEETHOME”’ 등 베이스드럼을 박자마다 내리꽂는 하우스 뮤직 스타일의 곡도 여럿이다. 백예린은 특유의 고혹적 음색과 가창으로 고통스러운 사랑의 가시밭길 위를 벨벳 런웨이처럼 사뿐 걷는다. 장밋빛 이율배반이 앨범 전반에 넘실댄다.

꿈결 같은 색소폰 아웃트로가 인상적인 3번곡 ‘I am not your ocean anymore’는 “휘트니 휴스턴의 R&B와 ‘워시드 아웃’의 드림팝이 혼재된 느낌”.(구름) 대담한 반전을 탑재한 5번 곡 ‘Ms. Delicate’에는 들릴 듯 말 듯한 라틴 퍼커션까지 촘촘하게 짜 넣었다. 4번 곡 ‘Hall&Oates’에는 몽롱한 일렉트릭 피아노 위로 1970, 80년대를 풍미한 미국 듀오 ‘홀 앤드 오츠’에 대한 헌정을 담았다.

신작의 변화엔 새로운 공동 편곡자 방민혁의 참여도 한몫했다. 백예린은 “과감한 브레이크나 악곡 전환 같은 선택을 더 용기 있게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번 앨범도 99%의 가사가 영어다. 발음이 부드러워 본인의 가창에 잘 맞기 때문이라고.

“영어 작사가로서는 블러섬 디어리(1924∼2009)의 시적 은유, 에이미 와인하우스(1983∼2011)의 직설적 디테일, 상반된 두 스타일에서 동시에 큰 영향을 받았어요.”

백예린은 록 음악도 즐긴다. 감상자에 머물지 않는다. 그와 구름이 속한 4인조 록 밴드 ‘The Volunteers’의 정식 앨범도 내년 3월쯤 낼 계획이라고. 백예린의 방에는 영국 록 밴드 ‘울프 앨리스’의 포스터가 걸려 있다.

“성격이 이렇다(내성적이다) 보니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게 늘 두려웠어요. 그래서 (JYP) 연습생 생활도 힘들었죠. 모두가 보는 자리에서 평가를 받는 게 너무너무 두려운 사람이었어요.”

하지만 큰 회사를 나와 자립하는 일보다 더한 공포는 타인에 의해 자신의 세계가 깎여나가는 일이었다.

백예린은 신작 가사 중 ‘Hate you’에 담긴 것이 가장 맘에 든다고 했다.

‘널 이겨낼 수 있을 만큼 강해/왜냐면 나 같은 사람은 너 같은 사람들을 통해 더 나은 곡을 쓰거든.’

백예린의 현재는 그 어느 때보다 강해 보였다.

“제가 너무 좋은 음악을 들으며 여기까지 온 것처럼, 제 음악이 어린 세대에 좋은 영향을 줄 수 있기를 바라요. 저를 기른 보아, 빛과 소금, 유재하의 음악처럼, 그렇게요.”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백예린#컴백#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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