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뚜기 3세’ 뮤지컬 배우 함연지 “최고의 스트레스 해소법? 펑펑 우는 것”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1월 4일 09시 46분


코멘트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오뚜기 3세’ ‘연예인 주식부자’ 등 타이틀을 가진 함연지(28)가 본업인 뮤지컬 배우로 대중과 만난다. 지난달 29일 공개한 트레일러 영상을 시작으로 20~22일 케이블TV 방송과 네이버 온라인 상영을 계획 중인 웹뮤지컬 ‘킬러파티’서 ‘나조연’ 역을 맡는다. 양준모, 신영숙 등도 출연한다. 최근 서울 강남구 샌드박스네트워크 사무실서 만난 그는 “이 시기에 관객 앞에서 노래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진심으로 행복하다”며 밝게 웃었다.

초등학교 시절, 사촌 언니가 붓을 잡는 모습에 반해 예원중학교에 입학했다. 매일 목탄을 쥐고 살아 코를 풀 때마다 검은 콧물이 나올 정도였다. 목욕탕에 갈 때면 온몸에 묻은 검댕을 보고 아주머니들이 “너 어디 탄광에서 왔니?”라고 물을 정도였다. 하지만 디즈니에 푹 빠져있던 소녀는 뮤지컬이란 장르를 알게 된 뒤 새 목표가 생겼다. ‘뮤지컬 무대에 서야겠다!’

3년이 흘러 외국어고등학교에 가면 유학을 갈 수 있다는 걸 알았다. 미국서 뮤지컬을 배우기 위한 단계였다. 우수한 성적으로 돌연 대원외고에 진학하더니, 졸업 후 미국 뉴욕대학교에 입학해 연기를 배웠다. 하고픈 것도 많았고 ‘재능 부자’였어도 꿈은 늘 확고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미국 미시건에서 열린 ‘뮤지컬 캠프’ 오디션에 혼자 갔어요. 통나무집에 뮤지컬 덕후인 또래들이 모여 하루 종일 뮤지컬 얘기만 했죠. 캠프 첫째 날 밤에 침대에 누웠는데 너무 행복해 천장에서 막 별이 보였어요.”

대학 시절엔 누구나 꿈꾸는 브로드웨이 문도 두드려봤다. 그는 “미국 영주권이 없어 배우 노조 가입도 안 되고, 오디션도 볼 수 없었다”고 했다. 그래도 “노래하고 춤추는 환상적인 느낌이 좋았다”며 국내로 발길을 돌렸다. 뮤지컬을 결코 멈출 수 없었고 지금도 ‘덕업일치’의 삶을 산다.

이번 작품은 한 저택 파티 중 벌어진 살인 사건이 배경이다. 현장에 도착한 수사관이 배우 9명을 각자 다른 방에 넣고 신문한다. 배우들이 한 연습실, 무대에 모이지 않고도 집에서 촬영을 진행하면서도 스토리와 어우러진 뮤지컬을 만들어냈다. ‘자가격리 뮤지컬’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함연지는 “카메라 렌즈를 바라보고 상대역 삼아 연기했다. 종종 옆에 있는 스태프가 상대역 대사를 읽어주기도 했다”고 했다. 이는 그야말로 실험에 가까웠다. 마냥 신기한 생각도 들었지만 넘버와 연기를 이어붙인 촬영·편집 결과물을 본 그는 “웹뮤지컬의 가능성을 봤다”고 했다.

낮에는 공인중개사로 일하고 밤에는 주연 배우를 꿈꾸는 ‘나조연’ 배역은 다소 노출이 있는 의상도 소화해야 했다. 극 안에 펼쳐진 또다른 상황극에선 ‘사자 조련사’ 역할을 맡기 때문. 집 안에서 무대의상을 소화했다. 가족은 이번에도 그의 든든한 우군이다.

“아버지는 이미 제 대학시절 공연부터 쭉 보시면서 훨씬 노출이 심한 의상에 트월킹(골반을 흔드는 춤)까지 보셨죠. 그래서인지 아버지는 이번 의상을 보고도 전혀 아무렇지도 않아 하세요. 하하.”

뮤지컬 음악보단 팝, 가요를 더 좋아한다는 그의 남편도 “내 눈에는 네가 천생 배우로 보인다”며 응원한다. 평소에도 힘든 일이 있으면 함연지는 퇴근한 남편을 보고 한바탕 크게 울며 스트레스를 푼다. “눈물에 순화 기능이 있잖아요. 제겐 울음이 제일 좋은 스트레스 해소법입니다. 숨도 못 쉴 것처럼, 꼭 누가 죽은 것처럼 남편을 부여잡고 엉엉 울어요.”

캐릭터를 혼자 연구하고 대본을 분석하는 과정은 늘 짜릿하다. “다 큰 어른들이 모여 나름의 규칙과 장면을 만들고, 특정 캐릭터를 연기하는 게 꼭 어린이들의 소꿉놀이 같은 거잖아요.” 이번엔 공인중개사 역할을 위해 극의 배경이 된 양수리 일대 지도를 훑으며, 실제 본인이 일하고 있을 법한 부동산 사무소를 정해 캐릭터에 몰입했다.

웹뮤지컬이 마냥 신나기도 했지만, 엄연히 새로운 장르라 연기 고민도 있었다. 그는 “드라마처럼 연기해야하는지, 웹툰처럼 딱딱 찍히는 연기를 해야 하는 건지 처음엔 감이 잘 안 왔다”고 했다. 그는 연구 끝에 함연지만이 가질 수 있는 자연스런 매력을 배역에 입히기로 했다. 톡톡 튀고 발랄한 연기에 캐릭터가 가진 ‘백치미’를 살리며 생동감 넘치는 넘버를 선보인다.

그는 사실 대중에게 ‘오뚜기 창업주 손녀’로 먼저 각인됐다. 최근 예능, 유튜브서도 활발히 활약하고 있어 배우 자체보다는 인간 함연지의 모습이 더 주목받고 있다. 이미지 소비가 많아 배역에 큰 제약이 따를 수 있겠다는 고민도 있었다. 때로는 대중의 따가운 눈초리도 받았다. 그럴 때마다 그는 움츠러드는 대신 한 발 더 앞으로 나서기로 했다.

“속상하게 생각하면 솔직히 한도 끝도 없죠. 숨기만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결국 뮤지컬을 꾸준히 하면서 스스로 증명하는 게 답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분들이 저를 지켜봐주시는 건 배우로서 저를 알릴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요. 버티면 승리한다는 말을 믿어요!”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