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이 쓰는 법]“사람답게 살 권리 기본소득이 만든다”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0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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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의사와 기본소득’ 쓴 정상훈 작가

전영한기자 scoopjyh@donga.com
전영한기자 scoopjyh@donga.com
의사 정상훈 씨(49·사진)의 책 ‘동네 의사와 기본소득’(루아크)은 제목처럼 기본소득에 대한 이야기다. 모든 사람에게 일정한 액수의 돈을 매월 조건 없이 지급하는 기본소득은 재난기본소득 덕분에 우리에게 낯설지만은 않다. 하지만 실현과 지속 가능성에 대한 의문 등으로 실행하고 있는 나라는 없다. 그럼에도 그의 책 속 글들은 ‘기 승 전 기본소득’이다.

“한 10년 전에 기본소득이란 걸 처음 들었을 때만 해도 황당하다고 느꼈다. 그런데 올 초 돌아가신 어머니가 몇 년 전 편찮으시면서부터 당신의 삶에 다른 가능성은 없었을까 생각해봤다. 기본소득이 있었다면 어머니의 삶이 확 달라졌을까….”

27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난 그는 어렸을 적 라디오 트랜지스터 수천 개를 조립하는 부업으로 생계비를 보태던 어머니, 그런 어머니를 구박하던 가부장적 아버지, 그리고 끊이지 않던 부부싸움을 떠올렸다. 흥 많고 노래 잘하던 어머니는 끝내 가정이라는 ‘감옥’ 밖을 벗어나지 못했다.

“기본소득 논의가 걱정되고 아쉬운 것은 이론가의 철학적 설명 아니면 정치가의 정책적 주장뿐이라는 점이다. 보통사람들의 삶과 연결지어 이야기하는 사람은 드물다.”

콩팥이 손상됐어도 가족에게 연락도 못하는 찜질방 청소부 할머니, 열이 펄펄 끓는 발달장애인 아들을 뒀지만 일을 쉴 수 없는 직장여성, 공사장에서 다쳤지만 원청업체 눈치에 산재보험 청구가 어려운 청년 등 진료하면서 만난 이웃들이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해주는 단초가 기본소득이라고 그는 믿는다.

“다양한 처지의 사람들 이야기를 담으려다 보니 기본소득이 만병통치약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다. 그러나 ‘기본소득 받아서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같은 건 없다. 기본소득은 여성 노동자 환경 청소년 장애인 등 다양한 운동과 손잡고 사회를 바꾸려 노력할 때만 의미가 있다.”

정 씨는 서울대 의대를 다닐 때부터 의료로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일을 해왔다. ‘국경없는의사회’ 소속이었을 때는 에볼라 바이러스가 휩쓸던 아프리카에 진료하러 간 첫 한국인이기도 했다. 병원에 소속된 적도, 병원을 차린 적도 없다. 가끔 개인병원 의사가 휴가를 갈 때 대신 진료한다. 최근 그를 만난 한 출판 관계자는 “가톨릭 사제 같다”고 했다.

좌파도 기본소득을 반대한다. 노동계는 “노조 힘을 빼앗긴다”며, 사회복지주의자들은 “복지서비스도 취약한데 무슨…”이라며. 민주노총도 원칙적으로 반대한다. 재원 마련을 위해 증세가 필수인데 조세 저항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일에 매여 바쁘고, 먹고살기도 힘들고, 가족끼리 대화도 못 하는데 이웃의 처지에 신경 쓸 겨를은 없다. 기본소득이 있어서 자기 삶이 조금은 여유로워져야 조금 더 서로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 궁극적으로는 세계 보편 기본소득을 원한다.” 그 같은 이상주의자도 필요하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동네 의사와 기본소득#정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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