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세대 온라인 놀이문화가 낳은 ‘첵스 파맛’

김은지 기자 입력 2020-07-11 03:00수정 2020-07-1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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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일회성 선거 이벤트에서 달달한 초코맛 제압하는 이변
중복투표 판정뒤 ‘초코맛 승리’ 귀결
젊은층 “공약 지켜라”… 끝내 제품화
한정판 품절 행진에 기업도 방긋
시식 체험단에 제공된 농심켈로그 ‘첵스 파맛’의 포스터. 농심켈로그 제공
농심켈로그가 지난달 29일부터 대파가 들어간 ‘첵스 파맛’ 제품의 한정 판매에 나섰다. 달달한 맛이 대부분인 시리얼이 전례 없이 채소 맛으로 출시된 배경에는 MZ세대(밀레니얼세대와 Z세대)의 끈질긴 관심과 요청이 있었다. 제품을 둘러싼 일련의 스토리가 재미와 공정성을 추구하는 MZ세대의 특성과 맞아떨어지면서 이슈가 됐기 때문이다.

16년 전인 2004년 첵스 초코는 어린이 소비자의 관심을 끌기 위해 ‘대통령 선거’ 이벤트를 진행했다. 초콜릿 맛을 대표하는 ‘밀크초코당’ 대통령 후보 ‘체키’와 파 맛을 대표하는 ‘파맛당’ 대통령 후보 ‘차카’를 내세운 선거로, 파를 싫어하는 어린이 입맛을 염두에 둔 답이 정해진 이벤트였다. 그런데 한 온라인 커뮤니티 이용자들이 재미 삼아 차카에게 몰표를 던지면서 차카가 체키를 수만 표 넘게 따돌리자 당황한 농심켈로그는 중복 투표 건을 삭제해 체키를 당선시켰다. 누리꾼들은 부정선거라고 항의하면서 “첵스 파맛을 출시하라”고 요구했다.

잠깐의 해프닝에 그쳤을 법한 첵스 파맛 사건은 그 당시 어린이였던 MZ세대가 집요하게 당시 사건을 소환하면서 이어졌다. 누리꾼의 장난으로 대파 맛 첵스가 출시될 뻔했다가 부정선거 때문에 무마됐다는 스토리는 ‘밈(meme·소셜네트워크서비스 등에서 특정 콘텐츠를 다양한 모습으로 패러디하며 즐기는 현상)’을 즐기는 MZ세대의 취향과 딱 맞아떨어졌다. 특히 첵스 파맛 스토리의 부정선거 테마는 공정성 이슈에 민감한 MZ세대에게 흥미로운 요소로 작용했다. 적극적으로 놀이에 임할 명분을 부여받은 MZ세대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활발히 ‘첵스 초코나라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다.

온라인 놀이 문화에 익숙한 이들은 첵스 초코의 광고 유튜브 영상 등 첵스 초코와 관련된 게시물마다 ‘체키를 탄핵시켜야 한다’ ‘첵스 파맛을 빨리 출시해라’ 등의 ‘댓글 테러’를 시작했다. 2018년에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첵스 초코 체키를 탄핵시켜 달라’는 게시글이 올라와 약 400명의 동의를 받았다. 텍스트보다 시각적 콘텐츠에 익숙한 MZ세대는 첵스 초코 포장의 그림을 ‘첵스 비리’ 포스터로 패러디하는 등 다양한 시각적 패러디물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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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요한 요청에도 상품 경쟁력이 떨어지는 첵스 파맛 제품을 선뜻 내놓지 못했던 농심켈로그는 밈이 점점 더 인기를 끌고 단맛과 짠맛이 어우러진 ‘단짠’이 트렌드로 떠오르면서 마침내 출시를 결정했다. 농심켈로그 관계자는 “오랜 기간 첵스 파맛에 보여준 소비자의 염원에 보답해야겠다고 판단했다”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온라인 활동이 활발한 요즘이 출시 적기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가수 비가 출연한 농심의 ‘새우깡’ 유튜브 광고. 농심 제공
업계에서는 MZ세대의 요구가 실제 마케팅에 적용되는 사례가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불가능할 것 같았던 첵스 파맛 출시가 실제 이뤄질 만큼 MZ세대의 효능감이 높아지면서 이들이 더욱 적극적으로 기업의 마케팅을 ‘주도’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온라인 소통에 익숙한 MZ세대는 기업에 자신의 목소리를 전하는 데 거침이 없고, 기업 입장에서도 효과가 보장된 마케팅을 마다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농심은 지난달 ‘새우깡’ 모델로 가수 비(정지훈)를 발탁했다. 비가 2017년 발표한 노래 ‘깡’이 뒤늦게 열풍을 일으키면서 최근 MZ세대의 요청이 쇄도했기 때문이다. 농심 관계자는 “소비자가 고객센터로 전화해 ‘비를 모델로 써달라’고 요청한 건만 100건이 넘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종합식품기업 팔도는 더 매운 맛의 비빔면을 출시해 달라는 소비자들의 요구를 반영한 한정판 ‘괄도네넴띤’을 출시하기도 했다.

제품이 실제로 출시된 이후에도 소비자의 뜨거운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첵스 파맛은 출시 전 시식단 모집에 1만4000여 명이 지원하는가 하면, 이틀 만에 온라인 채널에서 제품이 품절되고 대형마트도 일시 품절 사태를 겪었다. 팔도의 괄도네넴띤은 출시 2개월 만에 1000만 개가 팔렸다.

한국의 밀레니얼 세대를 분석한 ‘요즘것들’의 저자 허두영 데이비드스톤 대표는 “MZ세대는 오프라인보다 온라인에서의 활동이 익숙한 세대로, 익명에 기반하고 있어 기업이나 유명인과도 거침없이 소통한다”며 “이런 이유 때문에 선배 세대에게는 소소해 보이는 놀이들이 큰 파급 효과로도 나타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은지 기자 eunj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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