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이 쓰는 법]“恨 맺힌 한국 요괴는 그다지 무섭지 않죠”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5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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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요괴도감’ 쓴 고성배 작가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1980년대 일본 애니메이션 오타쿠(御宅·특정 분야에 심하게 매료된 사람)의 출현을 리스트 작업에서 찾는 견해가 있다. TV 만화영화의 제목과 작화가 등을 꼼꼼하게 모아놓은 것이다. 다른 말로 아카이빙(archiving)이다. 혼자 놀기, 은폐와 엄폐를 일삼던 덕후(오타쿠를 발음에 가깝게 표기한 우리말 조어)가 세상에 나선다. ‘동양요괴도감(東洋妖怪圖鑑)’(비에이블)의 저자 고성배 씨(36·사진)가 그렇다. 책 제목은 오래전 학교 앞 문방구에서 팔던 ‘○○대백과’류를 연상시키지만 내용은 탄탄하다. 고 씨를 28일 서울 광화문 이마카페에서 만났다.

―당신은 덕후인가.

“아니다. 다만 어렸을 때 ‘덕후 같다’는 말은 들었다. 뭔가 꽂히면 갑자기 은연중에 ‘로봇대백과’ 같은 옛날 아동서적이나 장난감 등을 모았다. B급 감성이라고나 할까.”

―왜 요괴에 관심을 갖게 됐나.

“1980년대 ‘요괴대백과’라고 일본책을 무단 복제해 번역도 엉망인 책이 있었는데 재미있었다. 지난해 ‘한국요괴도감’을 냈는데 초판 3000부 등 3쇄를 찍었다. 동양으로 넓혔다. 이런저런 요괴를 뭉쳐놓고 보니 새로운 규칙성을 찾게 돼 재미있었다. 아카이빙의 매력이다.”

동양요괴도감에는 중국, 일본을 중심으로 말레이시아 필리핀 인도 이란 이라크 등의 요괴 278종이 소개돼 있다. 요괴 일러스트레이션은 고 씨가 직접 그렸다.

―나라마다 요괴는 어떻게 다른가.

“중국은 뱀 사슴 호랑이같이 있을 법한 생물이 많다. 일본은 혼이나 영(靈)이 사물과 합쳐져 잔혹한 것이 많다. 한(恨)을 바탕으로 하는 한국 요괴는 별로 무섭지 않다.”

―독자 반응은 어떤가.

“평소에 만나지 못하는,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한 바람이 있다. 비현실적인 것을 통해 현실감을 채운다고나 할까. ‘요새같이 머리 아플 때 이런 말도 안 되는 것들을 보면 환기가 된다’는 피드백도 있다.”

―요괴는 정말 서브컬처 장르 아닌가.

“어린이들이 즐겨 보는 ‘신비아파트’에는 한국적 요괴가 많이 나오는데 거리낌 없이 받아들인다. 서브컬처가 더 이상 서브(sub)가 아닌 것 같다.”

―이 책이 어떻게 읽히기를 바라나.

“창작자에게는 디테일을 살리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일반 독자는 ‘실제 있었을 수도 있겠다’는 상상력을 키워보면 좋을 것 같다.”

―원래부터 작가를 꿈꿨나.

“건축학을 전공해 건축사무소에서 일했는데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 건강도 좋지 않았다. 그만두고 카피라이터로 일하다가 2014년 독립출판을 시작했다. 지금은 창작자, 편집자다.”

―앞으로 하고 싶은 작업은….

“괴물이 아니더라도 아카이빙은 하고 싶다. 잊혀져 가는 것을 꾸준히 모아 이야기하다 보면 생명력을 얻게 되지 않을까. 저에게는 그리움인데 요즘 세대에게는 새로움이지 않나.”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동양요괴도감#고성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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