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의 역동성, 깊이, 방대함에 매료”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5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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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사마천의 사기’ 1, 2권 펴낸 원로 만화가 이희재씨
40대에 처음 접하고 감동받아 20여년 지나 기회얻어 매달려
내년 상반기 총 7권으로 완간
“故고우영 선생은 역사만화 대가 지금도 펼쳐보면 자극받아”

4일 서울 강북구 자택에서 만난 이희재 씨는 “60여 년 전 처음 읽은 만화 속 그리스 전함들을 고향인 전남 신지도 앞바다에 상상으로 가득 띄워 놓고 가슴 벅차 했던 기억이 아직 또렷하다”고 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4일 서울 강북구 자택에서 만난 이희재 씨는 “60여 년 전 처음 읽은 만화 속 그리스 전함들을 고향인 전남 신지도 앞바다에 상상으로 가득 띄워 놓고 가슴 벅차 했던 기억이 아직 또렷하다”고 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왜 만화 속 어린이는 꼭 밝고 명랑해야 하지? 옆집 꼬마가 날마다 재미있게 살고 있나? 엊저녁에도 서럽게 울면서 엄마 기다리던데…. ‘악동이’는 그런 의문에서 출발했다.”

4일 신간 ‘사마천의 사기’ 1, 2권(휴머니스트)을 펴낸 이희재 씨(68)는 1980년대 코흘리개 말썽쟁이 캐릭터 ‘악동이’로 인기를 끈 만화가다. 만화잡지 ‘보물섬’에 처음 선보였던 악동이에 대해 그는 “어린이 만화이니 밝은 꿈만 그려야 한다는 비현실적 압박에 대한 저항으로 빚어낸 이야기”라고 했다.

“책방에서 미국 작가 빅토리아 빅터의 ‘악동일기’라는 동화를 보고 ‘이걸 원작 삼았다’고 내세우면 괜찮겠다 싶었다. 서양 작가 작품이라면 다 ‘명작’이라 여기던 시절이었으니까. 명목만 그렇게 하고 내용은 완전히 새로 창작했다. 완력으로 애들을 괴롭히는 못된 골목대장 왕남이에게 악바리 꼬마 악동이가 맞서는 이야기. 부조리한 현실을 보여주는 한편, 그에 대항할 용기를 심어주고 싶었다.”

사기를 그가 처음 읽은 건 40대에 접어든 뒤였다. 그는 “출판사로부터 삽화를 부탁 받고 읽다가 역사 이야기가 어쩌면 이렇게 재미있을 수 있을까 하고 깜짝 놀랐다”고 회고했다.

궁형을 받은 뒤 ‘사기’ 집필에 몰두하는 사마천. 휴머니스트 제공
궁형을 받은 뒤 ‘사기’ 집필에 몰두하는 사마천. 휴머니스트 제공
“역동성, 깊이, 방대함을 두루 갖춘 귀한 책이다. 1997년 한 신문사에 찾아가 연재해 보겠다고 제안했는데 ‘요즘은 소소한 감동의 생활만화가 유행’이라며 거절하더라. 20년 가까이 지나서 기회를 얻어 달려들어 보니 내 노동력이 쇠했음을 절실히 느꼈다. 이틀 밤쯤 거뜬히 새우면서 아무 데서나 엎어져 잤다가 다시 그려도 괜찮았는데…. 이젠 옛날얘기다. 하하.”

이 씨의 ‘사기’는 내년 상반기에 총 7권으로 완간될 예정이다. 중국 역사를 다룬 만화라면 한국 만화 팬들에게는 여전히 고우영 작가(1938∼2005)의 작품들이 첫손으로 꼽힌다. 이 씨도 “고 선생은 천재였다. 그의 ‘십팔사략’을 이따금 다시 펼쳐 본다”고 했다.

“오자병법을 쓴 오기(吳起) 이야기를 자신 있게 그려놓고 어디 보자 하면서 십팔사략을 보니 이야기 전개와 표현에서 고 선생 것이 더 재미난 거다. 자존심 상해서 다 버리고 통째로 다시 그렸다. 아홉 살 때 아버지와 함께 탄 통통배 위에서 처음 읽은 ‘일리아드’ 만화처럼, 여전히 나를 자극시켜 주는 만화들이 있다는 사실이 행복하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사마천의 사기#이희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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