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검은색’ 하면 뭐가 떠오르세요?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4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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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색, 무색의 섬광들/알랭 바디우 지음·박성훈 옮김/132쪽·1만2000원·민음사

겨울밤이면 일산화탄소 중독을 막기 위해 공군 군악대 막사의 석탄 난로를 꺼야 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했다. 상명하복의 군대 문화에서 이의를 제기할 순 없었지만 ‘석탄의 음흉함’을 피하려는 순간, 차가운 추위와 무한한 밤에 동사(凍死)당할 또 다른 위험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그 ‘애국적인 밤’의 추위 속에서 동료 중 하나가 샹송을 부른다. “어둠, 그것은 어둠일 뿐! 더 이상 희망은 없어.” 모두 함께 마치 자장가처럼 따라 부른다.(‘군대의 검은색’)

이 책은 프랑스 철학자 알랭 바디우가 ‘검은색’을 생각했을 때 떠오르는 것들에 대한 기록을 모았다. 잉크, 검은 개, 적과 흑, 블랙 유머, 검은 표범, 검은 대륙, 고래 등 그가 검은색에서 연상해낸 주제는 예술 정치 철학의 영역을 넘나든다.

어린 시절 부모님이 단둘만의 여행을 위해 그를 피레네산맥 외딴 마을에 맡겨뒀을 때 밤길에서 만난 무서운 검은 개는 불안 두려움 괴물의 원형이 되고(‘어둠 속의 검은 개’) 글을 배우며 접하게 된 까만 잉크통은 문장이 굽이쳐 나오는 기적, 문자가 된 사유에 대한 경이로움을 발견케 하는 매개가 된다(‘잉크통’).

유년과 젊은 시절 경험담이 얽힌 글에서부터 가볍게 시작하지만, 검은색에서 변증법을 발견하고 우주의 암흑물질까지 다루는 만만치 않은 사유와 시적인 문장들이 어우러졌다. 검은색이란 매력적인 색에 얽힌 저명한 철학자의 통찰과 사유를 더 친근한 산문 형태로 엿보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검은색 무색의 섬광들#알랭 바디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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