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주민들과 파티하고, 운동도 하고…30년된 노후 빌딩의 놀라운 변신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2월 3일 15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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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기생충’ 보셨나요? 전 그 영화가 ‘건축의 호러’를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함께 공간을 사용하지만 그게 누군지 모른다는게 굉장히 큰 공포잖아요. 우리가 함께 사는 사람을 모른다는 익명의 공포가 있잖아요. 자발적인 커뮤니티를 꾸렸을 때 그 공포감을 덜고, 조금 더 심리적 안정을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건축가 송 멜로디)

나무를 닮은 집, 트리하우스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트리 하우스’는 그야말로 나무를 닮은 집이다. 크리스마스 트리처럼 각 세대들이 겹겹이 쌓아올렸고, 전체 건물이 하나의 집처럼 모든 세대가 중앙 정원과 연결돼 있다. 이 건물은 지난 10월 스페인 빌바오에서 열린 ‘2019 건축 마스터상(AMP)’에서 주거건축 부문상을 수상했고, 영국 디자인매거진에서 선정하는 ‘2019 Dezeen Awards’의 세계 톱5 주거 프로젝트로 뽑히기도 했다.

이 건물은 예일대 건축대학원에서 ‘코(Co)리빙 건축’을 전공한 송 멜로디 씨(29)가 설계했다. 그는 “고시원으로 상징되는 공유주택에 대한 기존관념을 깨고 싶었다”고 했다.

“법률적으로 고시원은 무조건 공유하는 공간들이 있어야 해요. 부엌도 공유해야 하고, 거실도 있어야 하고…. 그런데 고시원에는 사회적인 낙인(stigma)이 존재해요. 하루 빨리 성공해서 탈출해야 되는 공간, 옆방에 있는 사람은 ‘귀신’같은 익명의 존재고…. 따뜻한 커뮤니티 공간이 되려면 무엇보다 햇빛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건축가 김수근의 세운상가를 모티브로 한 중정에는 천장과 삼면의 창에서 햇빛이 쏟아져 내린다. 모든 입주자들은 중정을 거쳐 개인방으로 가기 때문에 커뮤니티 공간의 심장과도 같은 부분이다. 입주자들은 중정에서 일을 하고, 커피를 마시고, 함께 요리하고, 식사를 하고, 매트리스를 깔고 요가를 한다. 바비큐를 할 수 있는 옥상 정원과 애완견 파크도 공유하공, 지하주차장에서는 스타트업 ‘네이비’가 제공하는 차량 공유서비스가 있어 시간당 6000~7000원 정도에 테슬라 벤츠 BMW 등 고급 수입차를 빌릴 수 있다.

총 72세대가 입주해 있는 주거공간은 모두 개인실. 면적은 16㎡(5평) 정도로 작지만, 천장 높이가 3m인데다 복층구조로 돼 있어 공간감이 널찍하다. 3개월 기준 보증금 300만 원에 월세는 130만~140만 원대. 착한 가격은 아니지만 청소와 빨래 서비스를 해주는데다, 다양한 시설과 혜택을 등을 공유할 수 있어 객실이 비는 경우는 거의 없다.

엘리베이터가 마을버스인 ‘유니언 타운’

서울 영등포구 지하철 2호선 당산역 앞에 있는 ‘유니언타운’(union town)은 올해 4월에 오픈한 복합생활문화공간이다. 30년 넘은 9층짜리 현대직업학교 건물을 리모델링해 만든 이 건물에 들어서면 마을버스처럼 디자인된 엘리베이터가 반긴다. 4~5층 공유 오피스, 6~8층 주거시설 등으로 가는 행선지가 표시돼 있다.

입주자들이 말하는 가장 큰 이점은 ‘혼자 살아도 외롭지 않고, 인맥과 경험을 넓힐 수 있다’는 점이었다. 비결은 다양한 커뮤니티 공간이다. 당산철교와 한강의 야경을 볼 수 있는 멋진 뷰를 가진 9층 루프탑에서는 입주자들이 모여 핼러윈 파티, 콘서트, 독서모임, 영화상영, 필라테스와 같은 소모임이 끊임없이 펼쳐진다. 2층 영어 커뮤니티 카페에서는 게임이나 드라마에 대해 수다를 떨며 영어를 배우는 ‘소셜(Social) 러닝’이 이뤄지고, 입주자에겐 무료인 지하 1층 피트니스 센터에서는 회원들이 함께 GX를 하거나, 아예 한강변을 함께 달리기도 한다.

입주자의 90% 이상이 20~30대인 이 건물은 전체가 청년 스타트업 인큐베이팅 공간이다. 3층에 있는 6개의 공유주방에는 창업을 꿈꾸는 셰프들이 입주해 있다. 이곳에서 배달음식, 푸드트럭을 하는 사람들도 있고, 셰프들이 건물 1층에 고기집을 직접 창업하기도 했다. 공유주방에서는 일반을 대상으로 한 쿠킹클래스도 열리고, 먹방을 찍는 유튜버들의 인기 촬영장소이기도 하다. 4~5층 공유 오피스에 입주해 있는 사람들은 디자이너, 프로듀서 등 프리랜서들이 많다. 월 25만 원에 책상을 자유롭게 이용한다. 6~8층 코리빙 하우스에는 K팝 문화를 체험하러 온 외국인들도 많다. 9층 루프탑에서 펼쳐지는 각종 파티와 헬스장, 카페에서 자연스럽게 외국의 젊은이들과 어울리는 장면이 목격된다.

‘금빛행성32 파크’라는 캐릭터를 개발하는 디자이너 박재성 씨는 공유 주거와 오피스에 입주한 스타트업 대표들과 로고 디자인 등 수많은 협업을 하고 있다. 그는 외부 손님이 올 경우 회의실에서 미팅을 하고, 공유키친에서 셰프들이 해주는 요리로 점심식사를 한다. 박 씨는 “1년간 준비해온 책의 출판기념회를 9층 루프탑에서 할 예정”이라며 “홀로 일할 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소중한 인적 네트워크를 만들어주고 있는 공간”이라고 말했다.

이 건물을 운영하는 유니언플레이스의 직원은 48명. 이장호 대표(44)를 제외하고는 90% 이상이 20대다. 이 대표는 노후화된 중소형 건물을 활용한 새로운 도시재생 모델을 제시하고 싶었다고 했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공유 주택과 공유 오피스와 같은 부동산 사업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 졸업할 때 즈음 국제통화기금(IMF) 체제에서 벗어날 때였다. 당시 외국계 자본이 들어와 국내 부동산을 헐값이 사들인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부동산에 간접투자하는 리츠 펀드도 생겨났다. 그런 상황에서 부동산 펀드 매니저에 관심을 갖게 됐다. 리츠란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부동산을 매입하고, 잘 활용해서 수익을 나눌 수 있다. 부동산 투자 수익을 누군가가 독점하지 않는다고 하는, 어떻게 보면 ‘부동산의 민주화’ 개념으로 다가왔다. 이걸 직업으로 하고 싶다는 생각에 대학 4학년 때부터 공부모임에 쫓아다녔다. 첫 직장인 KB부동산신탁이었다. 리츠관련 업무를 했다. 이후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 부동산 금융을 더 공부했다. 귀국 후에도 부동산 투자 펀드 일을 계속해왔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40대로 접어드는 시점에서 고민이 많았다. 3년 전 회사를 그만두고 창업했다.”

―창업 이후 부동산을 바라보는 관점은 어떻게 바뀌었나.

“금융권 회사에 있을 때 투자했던 것은 대부분 대규모 프로젝트였다. 그러나 창업 이후에는 골목상권에 있는 중소형 빌딩이 눈에 들어왔다. 국내 도시가 오래되다보니 건물이 노후화하고, 건물주도 고령화돼 빛을 잃어가는 중소형빌딩이 많다. 노후화된 도시형 빌딩을 운영할 수 있는 솔루션을 제공하고 싶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실질적으로 어떤 컨텐츠와 프로그램을 가지고 부동산을 운영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었다.”

―도시형 빌딩을 재생하는 솔루션은?

“요즘 경리단길이나 삼청동, 익선동 등 서울에서의 도시재생은 리테일 식당 위주로 이뤄지다보니, 핫플레이스로 확 떴다가 금방 트렌디하게 유행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런 류의 도시재생 보다는, 일도 하고, 주거도 하고, 공부도 운동도, 먹거리도 함께 즐기고, 외국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며 24시간 365일 돌아가는 그런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그래야 공간의 매력도가 높아지고, 지역의 상권도 살아나고, 그렇게 지역이 선순환될 것이라고 생각해서 조금 어렵지만 ‘복합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공유오피스, 공유주거 등 단일 목적의 공간으로 규모의 경제를 키우기보다는, 한 공간에 많은 스토리를 담아내는 생활밀착형의 복합공간을 수직적으로 만들어서 공간의 활용도를 높이고, 시너지를 이뤄내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이런 생각에 공감하는 각 분야의 젊은 친구들이 모여서 직접 컨텐츠를 개발하고 기획했다. 창업을 꿈꾸는 셰프들이 F&B 공유주방과 식당을 운영하고, 커피와 제빵에 관심있는 친구들이 1층에 베이커리 카페를 만드는 식이다. 사람을 좋아하고, 공간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컨텐츠를 만들고, 집합체로 복합공간 브랜드를 만들고 있다. 도시재생을 통해 지역도 살리고, 청년들의 스타트업 인큐베이팅도 할 수 있는 모델이다.”

―이 건물은 원래 어떤 빌딩이었나.

“원래 30년 된 현대직업학교 건물이었다. 노후화가 많이 진행된 건물을 펀드를 통해 매입해서 리모델링했다. 건물은 코람코 자산운용이 펀드를 만들어 매입했고, 유니언플레이스가 임차해 운영하고 있다. 30년 된 건물이다 보니까 저희가 원하는 목적과 기능에 맞춰 대대적인 인테리어 공사를 했다. 리모델링 컨셉트는 복합생활공간이다. 물론 문화적인 것도 중요하지만, 첫 번째로 생각했던 것은 생활하는 공간이라는 점이다.”

전승훈 문화전문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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