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의 손끝에서 태어난 천장의 별똥별… 특별함을 정의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7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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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청희의 젠틀맨 드라이버]

천연 목재 장식의 세계
대부분 작업자 눈-손 감각에 의존 많은 시간과 공 필요해
롤스로이스 벤틀리 등 브랜드 목재가공 전담 부서 따로 두고도제식 훈련-교육으로 장인 키워
최근 자연훼손 최소화 위해 재생 목재 등으로 대체 노력도

롤스로이스 레이스 루미너리 콜렉션의 실내. 좌석 뒤쪽의 목재 장식에 조명이 더해져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Rolls-Royce Motor Cars/BMW AG 제공
롤스로이스 레이스 루미너리 콜렉션의 실내. 좌석 뒤쪽의 목재 장식에 조명이 더해져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Rolls-Royce Motor Cars/BMW AG 제공
자동차의 실내에 쓰이는 소재는 오랜 세월에 걸쳐 많은 변화를 겪었다. 대중차에서는 그와 같은 변화가 기능적 측면에 초점을 맞춰 이루어졌고 럭셔리 카도 넓게 보면 비슷한 과정을 거쳤다. 기능 이상으로 심미적 아름다움이 중요한 럭셔리 카에서는 장식적 요소를 어떻게 만드느냐가 차의 개성과 특별함을 정의하는 방법 중 하나다.

그런 점에서 고급스러움을 상징하는 전통적 소재인 목재는 시간의 흐름과 관계없이 럭셔리 카의 실내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예나 지금이나 목재 장식은 고급스러움을 상징했다. 진짜 목재를 쓰느냐, 목재 무늬 필름을 씌운 가짜 목재를 쓰느냐는 지금도 럭셔리 카와 그렇지 않은 차를 가리는 기준 중 하나이다.

천연 목재 장식이 럭셔리 카의 상징 중 하나인 이유는 엄청난 노력이 투입되는 공정에 있다. 원목에서 시작해 차에 쓸 수 있도록 기본 가공이 이루어지는 과정도 그렇지만, 원자재 상태에서 차의 실내에 쓰일 부위에 맞게 세부 가공하는 과정은 그야말로 장인들의 손끝에서 예술품이 탄생하는 과정에 비유할 수 있다.

최근에는 높은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컴퓨터와 레이저 절단기 등 첨단 기술이 쓰이기도 하지만 거의 원자재를 가공하는 단계에 머물고, 실제 차에 들어가는 부품으로 만드는 과정은 순수하게 작업자들의 눈과 손의 감각에 의존한다. 여러 공정이 현대화된 지금도 럭셔리 카에 쓰이는 목재 장식을 만드는 작업은 시간과 공이 많이 드는 일이다.

롤스로이스와 벤틀리 등 대표적 럭셔리 카 브랜드들은 노련한 작업자들로 이루어진 목재가공 전담 부서가 따로 있을 정도다. 많은 럭셔리 카가 구매자의 요구에 따라 맞춤 제작되는 만큼, 자동화 시스템을 쓰기보다는 뛰어난 감각과 기술을 갖고 있는 사람의 손으로 직접 만드는 것이 알맞다. 그래서 럭셔리 카 브랜드들은 도제식으로 운영되는 훈련 및 교육 과정을 마련해 수시로 장인들을 키우고 있다.

서로 다른 나무로 만든 판재를 이어 붙여 독특한 패턴을 주문할 수도 있다. Rolls-Royce Motor Cars/BMW AG 제공
서로 다른 나무로 만든 판재를 이어 붙여 독특한 패턴을 주문할 수도 있다. Rolls-Royce Motor Cars/BMW AG 제공
자동차의 내장재로 쓰는 목재는 고급 가구에 쓰이는 소재와 특징이 거의 비슷하다. 단단하면서도 결이 촘촘해 내구성이 뛰어나고, 기초 가공한 뒤에는 온도와 습도 변화에도 좀처럼 휘어지거나 뒤틀리지 않아 견고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독특한 결과 색이 있어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이 돋보인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대표적 소재들은 호두나무(월넛), 단풍나무(메이플), 참나무(오크), 물푸레나무(애시우드), 자작나무(버치), 마호가니다. 이들은 모두 개성 있는 무늬와 질감으로 오랫동안 가구 소재로 사랑받아 왔다. 자동차에서도 마찬가지다. 특별히 주문하지 않는 이상 럭셔리 카의 실내 장식에 쓰이는 목재는 대부분 이들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물론 자동차용 목재는 일반적인 가구에 쓰일 때보다 훨씬 더 까다롭고 섬세하게 다뤄진다. 주변 환경이 비교적 고르게 유지되는 가구와 달리, 자동차의 실내는 온도 변화가 심하고 햇빛이나 자외선에도 쉽게 노출될 수 있다. 손이 닿는 경우도 훨씬 더 많을 뿐 아니라 휘발성 물질이나 화재에 견디는 능력 등 자동차에 적용되는 환경 및 안전 법규도 충족해야 한다. 자동차 관련 법규가 이전보다 훨씬 강화된 만큼, 수십 년 전에 만들어진 차에 쓰인 것과 요즘 나오는 차에 쓰인 것은 눈에 보기에는 비슷해도 특성은 훨씬 더 뛰어나다.

목재 장식은 영국 럭셔리 카 브랜드의 오랜 강점 중 하나다. 오랫동안 럭셔리 카를 만들어 온 경험을 통해 목재 가공 기술과 노하우를 발전시킨 덕분에, 지금도 롤스로이스와 벤틀리 등의 실내에 쓰이는 목재 장식은 누구나 인정할 만큼 높은 수준을 자랑한다.

롤스로이스는 나무 한 그루에서 나온 목재를 가지고 한 대의 차를 꾸미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야 목재의 무늬와 질감을 통일성 있게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내 전체를 꾸미기 위해서는 적잖은 양의 목재가 필요하다는 것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의외로 큰 덩어리를 가공해 쓰기보다는 얇게 가공한 무늬목 판재를 쓰는 부분이 많다. 무늬목 판재는 습기를 고르게 머금은 천연 목재를 칼을 사용해 고른 두께로 얇게 잘라내 만든다.

무늬목 판재가 널리 쓰이는 이유는 고급 목재인 것도 있지만 탄력과 유연성이 있어 가공하기 쉬워서다. 특히 대시보드나 도어 내부, 기어 레버 주변처럼 곡면으로 이루어진 부분들은 거의 무늬목 판재를 플라스틱 부품 표면에 접착하는 식으로 만들어진다. 쓰이는 부위에 따라 큰 목재 덩어리를 가공한 뒤에 무늬목 판재를 붙이거나 서로 다른 나무로 만든 판재를 이어 붙여 독특한 패턴을 만들기도 한다.

얼마 전 국내에 공개된 벤틀리의 신형 컨티넨탈 GT는 실내를 꾸미기 위해 10m² 크기의 무늬목 판재를 자르고 다듬어 쓴다. 한 대 분의 무늬목 판재를 가공하는 데에는 아홉 시간이 걸리고, 대시보드 한 가운데에 있는 회전식 디스플레이를 덮는 부분에 판재를 입히는 작업에만 두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럭셔리 카 브랜드들은 목재 가공을 위해 도제식 교육 과정을 마련해 수시로 장인들을 키우고 있다. Rolls-Royce Motor Cars/BMW AG 제공
럭셔리 카 브랜드들은 목재 가공을 위해 도제식 교육 과정을 마련해 수시로 장인들을 키우
고 있다. Rolls-Royce Motor Cars/BMW AG 제공
최근에는 오픈 포어 방식으로 처리한 목재의 인기가 높다. 오픈 포어 처리는 나뭇결과 질감을 그대로 살리기 위해 일반적인 목재 장식보다 코팅을 얇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목재는 표면이 매끈하지 않고 울퉁불퉁한 것이 특징이다. 나무의 물관 등 홈이 파인 부분에 코팅 약품이 스며들어 평평한 부분보다 더 진한 색이 살아난다. 따라서 자연적인 느낌이 커 실내 분위기를 편안하게 만드는 데 도움을 준다.

Rolls-Royce Motor Cars/BMW AG 제공
Rolls-Royce Motor Cars/BMW AG 제공
첨단 기술과 더불어 목재 장식에 특별한 기능을 더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롤스로이스가 2018년 발표한 한정 생산 모델인 레이스 루미너리 콜렉션에는 독특한 목재 장식이 쓰였다. 이 장식은 체코산 튜더 오크(Tudor Oak) 목재를 얇게 가공하고, 독특한 패턴으로 작은 구멍을 뚫은 다음 뒤쪽에 176개의 발광다이오드(LED) 조명을 넣어 날아가는 별똥별 무늬로 빛나게 만든 것이다. 목재의 개성 있는 색상과 질감과 어우러져 은은한 빛을 내는 이 장식은 밤하늘을 연상케 하는 천장의 특수 조명 장식과 더불어 실내 분위기에 개성을 더한다.

Rolls-Royce Motor Cars/BMW AG 제공
Rolls-Royce Motor Cars/BMW AG 제공
그러나 목재는 천연 소재인 만큼 많이 쓸수록 그만큼 자연을 훼손하는 결과를 낳는다. 최근에는 자연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는 목재를 발굴하는 것도 자동차 업체들의 중요한 일 중 하나다. 그 결과, 과거에 쓰지 않던 종류의 새로운 소재가 등장하고 있다. 이른바 지속 가능한 목재나 재생 목재가 내장재의 원자재로 떠오르고 있다.

예컨대 베어낸 뒤에도 금세 새로 자라는 종류의 수종을 쓰기도 하고, 자연적 이유로 죽은 나무를 사용하는 것이다. 전자의 대표적인 예로는 대나무가 있고, 아프리카 지역에서 나는 사펠리(Sapele) 목재도 각광받고 있다. 사펠리는 무늬가 비슷한 마호가니의 훌륭한 대안으로 여겨진다. 후자로 꼽을 수 있는 것은 대형 산불로 죽거나 호수 바닥에 가라앉은 나무가 있다. 이런 것들은 이미 죽은 나무를 활용하는 만큼 살아 있는 나무를 베어 자연을 훼손하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이런 변화는 자동차 업체뿐 아니라 럭셔리 카를 사는 사람들에게도 바람직하다. 호화로움을 위해 자연이나 환경을 희생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자연이 만들어낸 천연 목재로 럭셔리 카의 품격은 누리면서 자연의 아름다움도 함께 지키는 것은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천할 수 있는 멋진 방법이 아닐까 한다.

류청희 자동차 칼럼니스트
#스타일매거진q#럭셔리 카#목재 장식#도제식 훈련#장인 육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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