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미의병 이끈 의병장 ‘척암 김도화 문집’, 독일서 돌아왔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4월 11일 16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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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 가장 앞장서 일본에 맞서 싸운 을미의병장 척암 김도화(1825~1912)의 문집 책판이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고국으로 돌아왔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1895년 을미사변과 단발령을 계기로 전국의 유생들이 일으킨 을미의병 당시 경북 안동 지역 의병장으로 활약한 척암 김도화의 문집 책판 1장을 지난달 독일 경매에서 낙찰 받아 국내로 들여왔다고 11일 밝혔다.

이번에 고국으로 들어온 ‘척암선생문집책판(拓菴先生文集冊板)’은 가로세로 48.3x19.1㎝에 두께는 2.0㎝다. 척암 문집을 찍기 위해 1917년경 만든 책판 1000여 장 중 한 장으로, 김도화가 ‘태극도설(太極圖說)’을 설명한 권9 23¤24장에 해당한다. 이전까지 확인된 척암선생문집책판은 20장으로, 모두 안동 한국국학진흥원 소장하고 있다. 이 책판은 2015년 10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한국의 유교책판’ 중 일부다.

안동에서 태어난 김도화는 고성 이씨 이찬의 딸과 1839년 혼인하면서 우리나라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대표하는 안동 임청각(臨淸閣) 가문의 사위가 됐다. 임청각은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 가옥이며, 김도화는 이상룡의 종고모부다.

김도화는 1895년 을미사변이 일어나자 고령(70세)에도 곽종석, 김흥락 등과 함께 일제의 국권 침탈을 우려하는 안동통문을 각지에 보냈다. 이듬해 결성된 안동의진(安東義陣)에서 권세연에 이어 2대 의병장에 올라 지휘부를 조직하고 의병 참여를 호소했으며, 상주 태봉에 주둔한 일본군 병참기지를 공격했다. 1910년 경술국치가 일어나자 대문에 이를 반대하는 ‘합방대반대지가(合邦大反對之家)’라는 문구를 써 붙이는 등 일제의 부당함에 끝까지 맞섰다. 정부는 이 같은 공로를 인정해 1990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유원모기자 onemor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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