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리가 제주 4·3 사건 추념식서 낭송한 시 ‘바람의 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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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년 4월 3일 11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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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K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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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이효리가 3일 제주 4·3 사건 70주년 추념식에서 낭송한 시 ‘바람의 집’은 제주4·3 희생자들의 아픔을 추모하는 내용으로 이종형 시인(63)의 작품이다.

이효리는 이날 오전 제주 4·3 평화공원에서 열린 4·3 70주년 추념식에서 ‘바람의 집’을 낭송했다. 이효리는 작곡가 김형석의 연주를 배경으로 시를 읊었다.

‘바람의 집’은 대표적인 제주 4·3 추모시다. 제주의 문인 이종형 시인이 펴낸 ‘꽃보다 먼저 다녀간 이름들(2018)’에 담긴 작품이다.

이종형 시인은 2004년 제주작가회의 기관지 ‘제주작가’를 통해 등단했다. 등단 이후 꾸준히 4·3에 대해 시를 써 왔다. 14년 만에 낸 첫 시집 ‘꽃보다 먼저 다녀간 이름들’에 그간 쓴 시들을 모아 수록했다.

최근에는 원로시인 신경림·정희성·이시영 시인부터 안현미·장이지·김성규 등 젊은 시인에 이르기까지 91명이 참여한 제주 4·3 70주년 기념 시 모음집 ‘검은 돌 숨비소리’ 발간에 앞장섰다.

한국작가회의 제주지회장이기도 한 이종형 시인은 “잊지 않는다는 것, 기억한다는 것만이 4·3의 전부가 아닐 것”이라며 “4·3 역사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 그 성찰의 시간이 바로 지금”이라고 해당 시집 발간 취지를 전하기도 했다.

▼아래는 이효리가 낭송한 ‘바람의 집’ 전문▼

‘바람의 집’

-이종형

당신은 물었다
봄이 주춤 뒷걸음치는 이 바람 어디서 오는 거냐고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4월의 섬 바람은
수의 없이 죽은 사내들과
관에 묻히지 못한 아내들과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잃은 아이의 울음 같은 것
밟고 선 땅 아래가 죽은 자의 무덤인 줄
봄맞이하러 온 당신은 몰랐겠으나
돌담 아래
제 몸의 피 다 쏟은 채
모가지 뚝뚝 부러진
동백꽃 주검을 당신은 보지 못했겠으나
섬은
오래전부터
통풍을 앓아온 환자처럼
살갗을 쓰다듬는 손길에도
화들짝 놀라 비명을 질러댔던 것
4월의 섬 바람은
뼛속으로 스며드는 게 아니라
뼛속에서 시작되는 것
그러므로
당신이 서 있는 자리가
바람의 집이었던 것

박예슬 동아닷컴 기자 ys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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