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포그래피와 함께한 ‘안상수 디자인 30년’

  • 동아일보

서울시립미술관 ‘날개. 파티’전

안상수 씨의 ‘홀려라’. 캔버스에 아크릴. 안 씨는 “홀린다는 것은 창작자로서 가져야 할 태도”라고 밝혔다.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안상수 씨의 ‘홀려라’. 캔버스에 아크릴. 안 씨는 “홀린다는 것은 창작자로서 가져야 할 태도”라고 밝혔다.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디자이너 안상수 씨(65)는 ‘안상수체’로 잘 알려졌다. 네모 틀 안에 놓인 글자로만 생각하던 한글을, 틀 밖으로 노닐도록 한 사람이다. 그는 “컴퓨터 프로그램이 숫자로 이뤄진 것처럼 디자인의 핵심이자 기초는 글자”라는 것, “글자를 부려서 디자인하는 타이포그래퍼들이 디자이너의 주축이 된다”는 것을 믿는다.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에서 열리는 ‘날개. 파티’전은 안 씨의 30여 년 작품 활동을 회고하는 전시다. 안 씨가 디자인한 작품들을 선보인 1부 ‘날개’와 그의 교육철학을 공개하는 2부 ‘파티’로 구성됐다.

‘날개’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문자’라는 것에 대한 안 씨의 생각이다. 그는 문자를, 언어를 표현하는 도구로 보는 게 아니라 문자 자체의 물성(物性)에 주목한다. 한글의 자음과 모음을 분해해 악보처럼 나열함으로써 소리를 시각화한 작업인 ‘도자기 타일’이 대표적이다. 최근작 ‘홀려라’는 캔버스 위에 아크릴로 그린 것으로 한글에 민화적 요소를 더한 작품이다. 예술에 대해 그가 갖고 있는 신념이기도 하다. “홀리면 어떤 대상이 꿈에서도 나타나고 밥 먹을 때 떠오르기도 하지 않느냐. 연애도 홀려서 하는 것이고. 창작은 몸을 던져 홀려야 이룰 수 있다.” 안 씨의 설명이다.

‘문자도 영상’은 안 씨가 금누리 작가와 함께 발간한 독립잡지 ‘보고서/보고서’를 비롯해 캘린더와 포스터 밑그림 등으로 작업한 문자도(文字圖) 파일을 디지털 영상으로 재작업한 것이다. 정보 전달매체로서의 문자가 아니라 조형성을 가진 표현의 주체로 보는 안 씨의 철학이 담겼다. 일반적인 회화나 조각 전시와는 달리 문자의 다양한 변형으로 이뤄진 전시는 얼핏 단조로운 듯하지만, 전시장을 돌아보다 보면 글자가 어떤 예술적 가치를 갖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파티’는 안 씨가 운영하는 교육협동조합 ‘파주타이포그라피티학교(PaTI)’의 약칭이다. 글꼴 디자인, 편집 디자인, 포스터 제작 등을 통해 한글 디자인 작업에 몰두해온 안 씨가 세운 이 학교는 ‘문자의 창조성’에 주목한 디자인 수업을 진행한다. 파티는 올해 처음으로 졸업생 14명을 배출했다. 그는 “독일 조형학교 바우하우스처럼 역사적인 콘텐츠를 남길 수 있는 학교를 디자인하고 싶다”는 소망을 피력했다. 파티가 자리 잡는 과정을 한눈에 보여주는 다이어그램과 영상, 사진 책자 등 관련 자료들이 전시됐다. 5월 14일까지.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안상수#타이포그래피#서울시립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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