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영화처럼 조희팔이 살아있었으면… 143분 내내 그 생각만 하며 관람”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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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행질주 영화 ‘마스터’… 조희팔 수사 담당했던 황운하 경찰청 수사구조개혁단장이 보니

 “조희팔이 영화에서처럼 살아 있었다면 좋겠다. … 143분 동안 그 생각만 하다 극장을 나온 것 같습니다.”

 황운하 경찰청 수사구조개혁단장(55·사진)은 최근 오랜만에 영화 한 편을 봤다. 지난해 12월 개봉해 700만 관객을 눈앞에 둔 영화 ‘마스터’다. 조의석 감독은 희대의 사기꾼으로 아직도 살아있다는 의혹이 남은 ‘조희팔 사망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밝혔다.

 “점심 먹고 나오는데 후배 경찰이 ‘모처럼 경찰이 거악(巨惡)을 척결하는 영화가 나왔다’고 하더라고요.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는데 조희팔을 다룬 영화라는 겁니다. 그길로 바로 극장에 갔죠.”(황 단장)

 

13일 만난 그는 한마디로 “영화가 아프게 와 닿았다”고 했다. 황 단장은 2012년 경찰이 ‘조희팔은 사망했다’고 공식 발표하던 당시 수사를 지휘한 경찰청 수사기획관이었다. 그는 영화 속 장면처럼 비밀장부에 대한 첩보를 실제 보고받았고, 수사망을 넓히려던 찰나 조희팔의 사망을 확인했다.

  ‘속이 다 시원하다’는 반응 속에 영화는 흥행에 성공했지만 경찰로서는 마냥 기쁠 수만은 없다는 게 황 단장의 말이다. “영화에선 조희팔을 찾아내 처절하게 응징하고 피해자들에게 피해 자금까지 모두 돌려주죠. 경찰차 수십 대가 비호 세력을 잡기 위해 출동하는 장면에선 소름이 다 돋더라고요. (조희팔이) 살아 있었다면, 우리도 저렇게 할 수 있었다면 하는 마음에….”

 영화처럼 조희팔이 살아 있다고 믿는 이들이 아직도 있다. 황 단장은 “믿지 않는 분들에겐 아무리 상황을 설명해도 설득하기 힘들 것”이라며 “다만 적잖은 국민들이 왜 수사 결과를 불신하게 됐는지 생각해보면 수사를 맡았던 경찰로서 책임감을 느낀다”고 했다.

영화 ‘마스터’에서 엘리트 경찰 김재명 역을 맡은 배우 강동원. ‘마스터’는 희대의 사기꾼이자 아직도 살아 있다는 의혹이 세간에 떠도는 ‘조희팔 사망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은 영화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마스터’에서 엘리트 경찰 김재명 역을 맡은 배우 강동원. ‘마스터’는 희대의 사기꾼이자 아직도 살아 있다는 의혹이 세간에 떠도는 ‘조희팔 사망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은 영화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극중에는 김재명(강동원)이라는 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 팀장이 등장한다. 경찰대 수석합격 뒤 사법고시까지 패스한 엘리트다. 온갖 외압에도 불구하고 비상한 두뇌로 거악을 척결한다.

 “사실 경찰은 영화에서처럼 엘리트가 아니라도 됩니다. 송강호 씨가 ‘살인의 추억’에서 말하잖아요, 미친 듯이 범인을 잡고 싶다고. 집념과 자부심만 있으면 범인을 잡거든요. 엘리트 김재명보다는 영화 ‘베테랑’ 속 서도철 형사(황정민)나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우 형사(박중훈) 같은 경찰이 많아져야 해요. 결국 현장에서 목숨 걸고 범인 잡는 건 경찰이니까요.”

  ‘경찰 간부’로 영화에 별점을 매겨달라고 했다. “별 네 개 반입니다. 너무 후한가요? 하하. 얼마 전 감독님을 만나 말씀드리긴 했는데 조희팔을 너무 미화했어요. 그래서 반 개 뺀 겁니다. 조희팔은 진 회장(이병헌)처럼 고도로 치밀한 사기꾼은 아니거든요. 사기 수법도 미화했고….”

 황 단장은 경찰대 1기 출신으로 경찰 수사권 독립을 주장해왔다. 지난해 12월 5일 단장으로 임명된 그는 “검찰이 ‘정윤회 문건유출 사건’을 제대로 수사했더라면 ‘최순실 게이트’까지 오지 않았을 것”이라며 검찰을 비판하기도 했다.

 황 단장은 앞으로 경찰 소재의 영화가 더 많아지기를 바란다고 했다. 경찰이 꼭 악당 잡는 멋진 역할이 아니어도 된다고도 했다.

 “형사가 악역으로 나와도 요청하면 열심히 촬영 협조하겠습니다. 단, 경찰을 검찰 심부름꾼 정도로 묘사하거나, 검찰은 선이고 경찰은 비리나 저지르는 이미지로 설정한다면 협조 못합니다. 형사 자존심 상하는 건 못 참거든요.”
  
장선희 기자 sun10@donga.com
#조희팔#마스터#강동원#황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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