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대공황부터 달리의 그림까지 동물원이 들려주는 이야기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8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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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 기행/나디아 허 지음·남혜선 옮김/408쪽·1만7000원·어크로스

아프리카 초원에서 야생 그대로 사는 동물들을 본 이들은 말하곤 한다. “이제 동물원에는 못 갈 것 같아.”

동물원은 철저히 인간을 위한 공간이다. 인간 세상의 풍파가 고스란히 반영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할 수밖에 없다. 대만 소설가이자 잡지사 편집자인 저자는 런던, 베를린, 로마, 상하이 등지에 있는 동서양의 14개 동물원을 통해 혁명, 전쟁, 외교, 예술 등 인간사의 면면을 조명한다. 단편 영화 제작, 번역 등 다방면에서 활동한 경험을 활용해 영화, 음악, 문학, 미술 등에 대해 종횡무진 써내려 갔다.

베를린 동물원은 대공황을 견딘 끝에 대대적으로 리모델링돼 울타리 대신 도랑을 파는 개방식으로 지어졌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때 도시에 영국군의 집중 폭격이 쏟아져 동물원에 있던 3715종 가운데 사자 두 마리, 코뿔소 한 마리 등 91마리만이 겨우 살아남았다.

한데 읽다보면 동물원이 메인 요리는 아닌 듯하다. 동물원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저자의 연상 작용의 출발점 정도로 여겨진다. 프랑스 남부에 자리한 몽펠리에 동물원을 보자. 이 동물원이 페르피냥 인근에 있다며 저자는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가 ‘페르피냥 철도역’을 창작한 사실을 떠올린다. 달리는 자신에게 끝없는 영감을 주는 이 기차역을 우주의 중심이라고 선언한다. 저자는 코뿔소를 유니콘의 후손이라 설정한 뒤 유니콘이 등장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를 끌어오는 식이다. 알고 있는 온갖 지식을 과시하는 듯한 느낌이 들고 약간 산만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다양한 상식을 제법 얻어갈 수는 있다.

뒤에 실린 동물원 연대기에는 프랑스 대혁명 발발, 청나라 멸망을 비롯해 다윈이 ‘종의 기원’을, 밀란 쿤데라가 ‘느림’을 각각 출간하고 영화 ‘마지막 황제’가 오스카 9개 부문을 석권한 시기 등이 정리돼 있다. 책의 성격을 압축적으로 보여 준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동물원 기행#나디아 허#동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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