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이 한줄]神과 짐승의 경계… 양쪽 특성을 모두 잃는 도시인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7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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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과 짐승의 양면을 갖춘 게 인간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그 양쪽의 특성을 모두 잃어버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걸어 다니는 시체이며 로봇이고 영적으로 공허한 존재입니다.―뤼미에르 피플(장강명·한겨레출판·2012년) 》
 
거대한 콘크리트 속에 가득 채워진 수백 개의 방 안에서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이 책은 서울 서대문구 신촌에 있는 오피스텔 ‘뤼미에르’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이 오피스텔은 실제로 소설 속 그 장소에 존재한다.

책의 특징은 현실에 바탕을 뒀다는 점뿐이 아니다. 뤼미에르 피플은 단편소설로 구성돼 있지만 완전하게 독립적인 이야기라고는 할 수 없다. 이 단편소설들은 마치 오피스텔의 구조처럼 느슨하게 연결돼 있다. 크리스마스면 자주 방영되는 영화 ‘러브 액츄얼리’의 구성을 떠올려보면 이해하기 쉽다.

실제로 존재하는 공간을 바탕으로 했지만 소설은 현실과 가상을 넘나든다. 뤼미에르 오피스텔에 실제로 살 것 같은 이도 나오고, 가끔은 공상 속에서나 떠오를 법한 인물도 등장한다. 이를테면 술집에 다니는 젊은 여성이 등장하는가 하면 박쥐로 변신할 수 있는 사람도 나오는 식이다.

하지만 그들 모두는 인간이다. 소설 속에서 그들은 공허감을 감추지 못하는 와중에도 살기 위해 발버둥친다. 생에 대한 의지는 박쥐인간이나 인간 모두 동일하게 그려지는 것이다. 현실과 가상의 경계는 이 지점에서 무너진다.

이 때문에 뤼미에르 피플을 읽은 후 어쩌면 그런 사람들이 그곳에 살지도 모른다는 잡념이 스쳐간다. 특히 기자처럼 이 오피스텔을 출퇴근길에 늘 마주하는 사람들은 더욱 그럴 것이다. 영화에나 등장하는 줄 알았던 재벌의 부도덕한 행태나 교육부 고위공무원의 “99% 개돼지” 같은 믿기 힘든 발언도 현실에서 거론되는 판에 박쥐인간 하나 정도 있다고 해도 믿을 수 있지 않을까.

황성호 기자 hsh0330@donga.com
#책#뤼미에르 피플#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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