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한강, 세계문학을 적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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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한강, 맨부커상 수상]소설 ‘채식주의자’로 맨부커賞 수상… 한국인 최초 ‘세계 3대문학상’ 쾌거
“아름다움과 잔혹 결합된 놀라운 작품”

16일 열린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시상식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소설가 한강씨. 그는 “내가 소설 속에서 던진 질문을 
독자들이 공유해 줘서 감사하다”면서 “이 기쁨을 가족과 친구들과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게티이미지 이매진스
16일 열린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시상식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소설가 한강씨. 그는 “내가 소설 속에서 던진 질문을 독자들이 공유해 줘서 감사하다”면서 “이 기쁨을 가족과 친구들과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게티이미지 이매진스
갖고 있는 것은 책과 시간이었다. 아버지가 소설가여서 책은 지천이었다. 해가 지는 줄도 모르고 책을 읽곤 했다. 10세 때 아버지가 안 쓰는 타자기를 주셨다. 자판의 ‘ㄱ’과 ‘ㅡ’와 ‘ㄹ’이 탁, 탁, 탁 소리를 명랑하게 내면서 ‘글’자가 만들어졌다. 그게 그렇게 신기하고 좋았다. 아마도 작가로서의 운명의 울림이 아니었을까 싶다. 소설가 한강 씨(46)의 유년기는 그랬다.

한강 연작소설 ‘채식주의자’의 한국어판(왼쪽)과 영역판 표지.
한강 연작소설 ‘채식주의자’의 한국어판(왼쪽)과 영역판 표지.
16일(현지 시간) 영국 런던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 박물관에서 열린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시상식은 22년째 걸어온 그의 작가 인생에 대한 놀라운 격려의 자리였다. 심사위원장인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의 문학 선임기자 보이드 통킨이 연단 서랍에서 책 한 권을 꺼냈다. “더 베지테리언 바이 한강(‘The Vegetarian’ by Han Kang).” 환호와 박수가 쏟아져 나왔다. 한 씨와 이 상을 공동 수상한 번역자 데버러 스미스 씨(29)가 함께 일어섰다. 눈물을 터뜨린 사람은 스미스 씨였다. 작가는 긴 손가락을 뻗어 동반자를 다독였다.

이 장면에서 작가의 어린 시절과 작품이 겹쳐진다. 그는 흰 손가락으로 종이 피아노를 치던 어린 소녀였다.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피아노를 사달라고 부모님께 애타게 조르지 못하고 종이로 피아노를 만들어 가만가만 쳤던 그다. 내성적인 반면 표현하려는 것을 온몸으로 조용히 담아내려고 분투해온 작가였다. 그 모습은 폭력에 저항하면서 스스로 나무가 되고자 한 수상작 ‘채식주의자’의 주인공 영혜와도 닮았다.

 
▼ 영문 번역한 데버러 스미스도 공동 수상 ▼

16일(현지 시간) 영국 런던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 박물관에서 열린 맨부커상 시상식장에 다정하게 앉아 있는 한강 씨와 포르토벨로 출판사 수석편집자 맥스 포터 씨, 번역자 데버러 스미스 씨(오른쪽부터). 창비 제공
16일(현지 시간) 영국 런던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 박물관에서 열린 맨부커상 시상식장에 다정하게 앉아 있는 한강 씨와 포르토벨로 출판사 수석편집자 맥스 포터 씨, 번역자 데버러 스미스 씨(오른쪽부터). 창비 제공
이 작품은 같은 제목의 ‘채식주의자’를 비롯해 ‘몽고반점’ ‘나무 불꽃’ 등 소설 3편을 연결한 것으로 주인공 여성과 그의 형부, 언니의 시점에서 각각 쓰였다. 통킨은 수상작에 대해 “놀랍도록 힘이 넘치는 작품이며 음산하면서도 잔혹한 소설”이라면서 “그러면서도 매우 아름답게 쓰였고 번역도 뛰어나다”고 평했다.

연세대 국문과에 들어와서도 미래가 막연했던 대학 시절, 작가는 어느 순간 자신이 꿈꾸는 소설을 직접 써야겠다는 생각에 습작을 시작했다. 1993년 대학을 졸업하고 출판사에 취직한 뒤 하루에 3, 4시간만 자면서 글을 썼다. 퇴근하고는 어서 책상으로 가고 싶어 집으로 뛰었다. 그 간절한 마음은 등단을 하고도, 아이를 낳고도, ‘채식주의자’를 쓸 때도 달라지지 않았다. 가까운 문인의 얘기를 빌리면 그는 ‘죽을 각오로 소설을 쓰는’ 사람이다. 작가 스스로 작품을 끝내면 그 작품처럼 살았다는 느낌 때문에 진이 다 빠진다고 했다.

한국 작가로는 최초로 노벨문학상, 공쿠르상과 함께 세계 3대 문학상의 하나로 꼽히는 맨부커상을 수상하는 자리에서 밝힌 그의 수상 소감은 차분했다. 말수가 적지만 자신의 생각을 밝힐 때는 자신이 쓰는 글처럼 아름답고도 묵직한 문어체로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작가다. 그는 이날 천천히 또렷하게 영어로 소감을 밝혔다. “책을 쓰는 것은 질문을 던지고 그 답을 찾는 과정이었다. 고통스럽고 힘겨웠지만 가능한 한 계속해서 질문 안에 머물고자 노력했다”고 말했다. 그는 ‘채식주의자’에 대해 “이 작품에서 내가 던지고자 한 질문은 ‘인간이란 무엇인가’였다”고 말했다. 특유의 환한 눈웃음을 지으면서 그는 만찬이 열린 시각 새벽을 맞은 고국을 향해 “깊이 잠든 한국에 감사드린다”고 인사를 보냈다.

아버지이자 선배 소설가인 한승원 씨에게 전화를 걸어 기쁨을 나눴음은 물론이다. 그는 “아버지를 생각하면 책상 앞에서 글을 쓰는 모습이 떠오른다”며 “아버지를 보면서 일찌감치 글쓰기가 기쁨과 고통을 수반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했다. 상금은 5만 파운드(약 8480만 원)로 수상자들이 반씩 나누게 된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소설가#한강#맨부커상#데버러 스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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